데뷔 21년 자우림 "조용필 선배는 50년, 우린 멀었죠"

입력 2018-06-22 00:00
데뷔 21년 자우림 "조용필 선배는 50년, 우린 멀었죠"

10집 '자우림' 발매, "100년 뒤 우리를 대표할 앨범"

"밴드는 라이브, CD는 시시"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청춘과 인간, 사회를 노래하는 밴드 자우림(이선규, 김진만, 김윤아)이 성년이 됐다. 데뷔작이 1997년 1집 '퍼플 하트(Purple Heart)'였으니 어언 21주년을 맞은 것이다.

22일 정규 10집 '자우림'을 발표하는 자우림을 전날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들은 밴드 불모지인 K팝 시장에서 오래 버틴 건 행운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데뷔할 때만 해도 앨범 두세 장만 내고 말겠지 싶었어요. 가장 감사한 건 멤버들이에요. 음악이든 정치든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예전과 똑같기는 힘들잖아요. 하지만 자우림 멤버들은 데뷔할 때 알던 것과 똑같아요."(보컬 김윤아 45)

"조용필 선배님께선 올해 50주년이시더라고요. 나대지 말자는 생각 중입니다. 아직 멀었죠. 사실 오래 하다 보면 나태해질 수 있는데, 2010년 MBC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며 심기일전할 수 있었고 최근에는 JTBC '비긴 어게인 2'로 그럴 기회를 얻었어요. 운이 좋았죠."(기타리스트 이선규 47)

우여곡절도 있었다. 드러머 구태훈(46)이 지난해 6월 팀 활동 중단을 선언한 것.

김윤아는 "구태훈 씨가 2000년대 초중반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팀을 하면서 다른 일을 하는 게 폐가 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선규도 "차라리 음악적 견해 차이 때문에 팀을 떠난 거면 좋았을 텐데, 음악 외적인 일로 그렇게 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번 앨범은 2013년 9집 '굿바이, 그리프.(Goodbye, grief.)' 이후 5년 만의 신보다. 패기 넘치는 신인이 셀프 타이틀을 내거는 것처럼, '자우림'을 전면에 앞세웠다.

베이시스트 김진만(46)은 "100년 뒤 누군가 자우림을 검색해본다면, 이 앨범을 듣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앨범에는 타이틀곡 '영원히 영원히'를 비롯해 '광견시대'(狂犬時代), '아는 아이', '슬리핑 뷰티', '있지', '기브미 원 리즌'(Give me one reason), '사이코 헤븐'(Psycho heaven), '아더 원스 아이'(Other one's eye), '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 'XOXO' 등 10곡이 담겼다.

김진만은 "전작들보다 사운드가 훨씬 촘촘하다. 유화로 치면 굉장히 되직한 물감으로 색칠한 사운드"며 "예전에는 '밴드는 즉흥적인 게 중요하지' 생각했지만, 연륜이 쌓이다 보니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이번 앨범을 마지막으로 누군가 건강상 이유로 급사할 수 있는 나이가 됐지 않느냐"고 웃으며 말했다.

김윤아도 "원래 멤버들에게 너무 스트레스 주지 말자는 생각이었지만, 9집을 기점으로 바뀌었다. 녹음실에서 굉장히 멤버들을 들들 볶는다. 음악동호회 느낌에서 한층 프로페셔널한 면을 지향하게 됐다"고 말했다.

주제는 다양하다. 지극히 사적인 사랑과 먹먹한 이별부터 병든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이선규는 "예전에 '자우림 앨범은 백화점 같다'는 얘길 많이 들었다. 물론 부정적인 뉘앙스였다"며 "하지만 앨범으로 이야기를 쭉 풀어나가는 재주는 제가 아는 친구 중에선 (우리가) 제일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윤아는 "백화점엔 옷, 식품, 가구, 가전제품이 다 있다. 그리고 이게 다 필요한 게 인생"이라며 "인간에겐 희망, 분노, 좌절, 사랑, 밝음, 어둠이 모두 있다. 이번 앨범도 그런 인간을 노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첫 번째 트랙 '광견시대'는 분노와 질문이 뒤섞인 곡이다.

'한없이 낮은 곳에서만 작렬하는 너의 분노/ 한없이 약한 곳에서만 폭발하는 너의 광기/ 닥치는 대로 날리는 손찌검/ 닥치는 대로 휘두른 발짓'이라는 가사에서 약자를 조롱하는 우리 사회의 숱한 얼굴들이 스친다.

"2004년 발표한 정규 5집에 '광야'(廣野)라는 곡이 있어요. 광야에서는 누군가를 잡아먹지 않으면 내가 잡아먹힌다는 내용인데, '광견시대'와 일맥상통하죠. 자우림은 예전부터 교육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요. 학교에서는 결과만 잘 나오면 된다고 가르쳐요. 도덕적 결함이 있는 인간이 되건 말건 상관없다고 하죠. 사회에 나가면 더욱 성과제일주의가 되죠. 개인적으로 앨범 전체에서 가장 슬픈 곡이에요."(김윤아)

7번째 트랙 '사이코 해븐'에는 귀여운 단서가 숨어있다. 1집 수록곡 '일탈'의 유명한 가사, '신도림역 안에서 미친 척 춤을'을 '신도림역 안에서 사이코 해븐'이라고 살짝 바꿔 넣은 것.

곡을 만든 이선규는 "10집쯤 됐으니 오마주를 한 것"이라며 "(자기)표절 시비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들은 새소년과 혁오밴드 등 후배들을 눈여겨보고 있다고 했다. 또 점점 밴드가 성공하기 어려워지는 환경을 안타까워했다.

이선규는 "사실 언론매체의 문제도 있다. 지난 20년간 많은 밴드가 나왔는데 항상 '제2의 자우림'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우린 괜찮지만, 그분들에게 정말 나쁜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아는 "이선희 선배님께서 오래 녹음해오신 녹음실이 문을 닫았다고 하더라. 음악산업에 지각변동이 있는 셈"이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자우림으로서 지금처럼 음악을 해나가는 것"이라고 거들었다.

이들은 7월 7~8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콘서트 '자우림, 청춘예찬'(紫雨林+靑春禮讚)을 열고 신곡 라이브 무대를 선보인다.

인터뷰 내내 정교한 사운드 메이킹 과정을 논한 자우림은 악동 같은 모습도 잊지 않았다.

"밴드는 라이브죠, CD는 시시해요. 자우림은 음원보다 라이브가 좋은 팀으로 정평이 나 있어요. 공연에 오시면 살아있다는 느낌을 얻고 광란의 무대를 만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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