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총리 "총선보다 대관식이 먼저"…민정이양 더 늦춰지나

입력 2018-06-20 09:58
태국 총리 "총선보다 대관식이 먼저"…민정이양 더 늦춰지나



(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태국 군부정권이 내년 2월로 예정된 총선 전에 마하 와치랄롱꼰(라마 10세) 국왕의 대관식을 먼저 치르겠다고 밝히면서 대관식을 이유로 총선 일정이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고 현지 언론이 20일 보도했다.

2014년 쿠데타를 일으킨 뒤 4년 넘게 집권 중인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는 전날 각료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최고 군정 기구인 국가평화질서회의(NCPO)는 대관식 준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모든 태국인은 이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쁘라윳 총리는 이어 기자들이 정확한 대관식 일정을 묻자 "총선 이전에 치러질 것"이라고 답했다.

와치랄롱꼰 국왕은 부친인 푸미폰 아둔야뎃(라마 9세) 전 국왕 서거 후 한 달 여만인 지난 2016년 12월 왕위를 승계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식 대관식을 치르지 않았고 구체적인 일정도 공표하지 않았다.

총리의 대관식 언급에 대해 위사누 크루어-응암 부총리는 "각료회의에서 대관식 문제가 논의되지 않아 이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총리가 대관식 일정에 대해 알고 있을 수는 있지만 나는 알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어쨌든 총리의 갑작스레 대관식 언급 이후 군부가 대관식을 빌미로 총선 일정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동안 쁘라윳 총리는 2014년 쿠데타 당시 이듬해 총선을 치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후 개헌과 후속 입법을 빌미로 총선 일정을 늦춰왔다. 또 푸미폰 국왕 서거 후 1년간 진행된 국장(國葬)도 총선 일정 지연의 이유가 됐다.

쁘라윳 총리는 그동안 외국 지도자나 국제기구 수장을 만날 때마다 자국의 총선 및 민정 이양 일정을 밝혀 왔다.

2015년 초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만났을 때는 1년 안에 총선이 치러질 것이라고 말했고, 그해 말 반기문 당시 유엔 사무총장을 면담할 때는 2017년 중순께 총선을 치르겠다고 예고했다.

또 그는 지난해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났을 당시에는 오는 11월 총선이 치러질 것이라고 약속했다.

더욱이 과도의회인 국가입법회의(NLA)가 정부조직법 입법 일정을 지연시키자 군부는 사실상 총선을 내년 2월로 미룬 상태지만, 정치권은 이 약속마저 지켜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쁘라윳 총리는 최근 지방을 순회하며 각료회의를 열고 지역 유지 등을 만나면서 사실상의 선거운동을 한다는 비판을 받았고, 군부를 지지하는 일부 정당은 탁신 계열의 푸어타이당 등 출신의 전직 의원을 영입하면서 정치권의 반발을 사고 있다.

한편, 대관식 일정을 언급한 쁘라윳 총리는 곧바로 유럽 방문길에 올라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잇달아 만날 예정이다.



그동안 군부 측의 총선 일정 지연에 항의하며 금지된 거리 집회를 열고 군부 퇴진을 외쳤던 정치권 및 시민단체는 쁘라윳 총리와 만나는 영국 총리와 프랑스 대통령에게 조속한 총선 및 민정 이양 압박을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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