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잔 술이 유익하다'(?)는 연구결과 나올 뻔했다

입력 2018-06-18 15:19
'하루 한 잔 술이 유익하다'(?)는 연구결과 나올 뻔했다

미 국립보건원, 주류업계 지원받아 연구하다 논란 일자 중단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주류업체들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하루 한 잔의 술이 심근경색을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어이없는 연구결과를 내놓을 뻔했다.

외신에 따르면 NIH는 기부금 형식으로 주류업계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이런 취지의 연구를 진행하려다 윤리와 신뢰성 문제가 제기되자 결국 중단했다.

이 연구는 총 7천800명을 대상으로 10년에 걸쳐 하루 한 잔씩 술을 마시거나 전혀 마시지 않는 그룹으로 나눠 진행할 계획이었다.

NIH는 뉴욕타임스가 주류업계의 연구비 지원을 받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논란이 일자 지난달 연구를 임시 중단했으며, 지난 15일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는 자체 조사결과가 나오자 최종적으로 중단 결정을 내렸다.

프란시스 콜린스 NIH 원장의 요청에 따라 이번 연구계획을 조사한 자문위원회는 NIH 소속 '국가 알코올 남용 및 중독 연구소(NIAAA)' 일부 직원이 직접 기부금을 요청했다며 이는 "연구과정의 진실성을 약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NIH는 앤하이저 부시 인베브(ABI), 칼스버그 브루워리 등 세계 5대 주류회사가 지원한 6천770만 달러(748억 원) 중 약 17%가 사용됐다고 밝혔다. 이 연구에는 총 1억 달러(1천105억 원)가 투입될 계획이었다.

NIH는 관련 규정만 지키면 국가 예산 외에도 재계의 지원을 받아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NIAAA 직원들이 주류업계와 유착 관계를 유지하며 선을 넘어선 것으로 밝혀졌다.

로런스 타박 NIH 부원장은 이런 유착 관계가 "의도적으로 편견을 갖게 해" 적당한 음주의 이점만 내놓을 가능성을 높였다면서 이는 "연구를 통해 얻은 과학적 지식을 믿거나 행동에 옮길만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NIAAA 직원들은 주류업계와 관계를 비밀에 부쳐왔으며, NIH가 이번 연구를 위해 주류회사 및 외부 단체에 연구비 지원을 요청하는 절차를 시작한 뒤에도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와 함께 이번 연구계획을 검토한 외부 전문가들은 매일 한 잔의 음주가 가져올 암이나 심장마비 위험 증가 등 잠재적 문제를 파악하기에는 시험 기간이 너무 짧고 연구 대상도 소규모라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시간주 웨인 주립대학의 로이 윌슨 박사는 관련 청문회가 끝난 뒤 "순전히 과학적 견지에서 왜 이런 연구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나를 포함해 1~2잔의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은 건강을 목적으로 술을 마시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술이 인간의 행동과 판단력을 저해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적정 수준의 음주가 건강상 혜택을 주는지를 놓고 논쟁이 계속돼왔다.

NIH는 여성은 일주일에 7잔, 남성은 14잔을 "저위험" 음주로 간주하고 있다.

타박 부소장은 연구비 문제가 해결된 뒤 관련 연구를 계속 진행할 것인지를 묻는 말에 "이는 진행하기 쉬운 연구는 아니다"고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eomn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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