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도래지에 내려앉은 예술…부산현대미술관 개관

입력 2018-06-15 16:19
수정 2018-06-15 21:33
철새도래지에 내려앉은 예술…부산현대미술관 개관



외벽에는 블랑 '수직정원'…위라세타쿤·레베르거·전준호 등 전시

소외된 서부에 문화공간…"동시대 미디어아트·설치 소개 주력"



(부산=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세찬 강바람에 건물은 진녹색 몸을 흔들어댔다. 해안 절벽에서 자라는 남보랏빛 해국(海菊)을 비롯해 넉줄고사리, 죽절초, 삼백초 등 외벽을 뒤덮은 식물들이 이리저리 쏠리면서 푸른 물결이 일었다.

공식 개관을 하루 앞둔 15일 방문한 부산현대미술관(MOCA)은 주변을 감싼 을숙도 숲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낙동강 하구에 자리한 을숙도는 손꼽히는 철새도래지(천연기념물 제179호)다. 철새와 이들을 쫓는 탐방객들 정도만이 오가던 섬 중앙에 부산현대미술관이 둥지를 틀었다.

부산현대미술관은 430억 원을 들여 땅 2만9천900㎡(9천 평)에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로 지어졌다. 2009년 건립을 위한 기본계획이 수립됐지만, 10년 가까이 지난 뒤에야 문을 열게 됐다.

도시 근교 대형 마트 같다는 지적이 빗발칠 정도로 삭막했던 미술관 외관은 프랑스 식물학자 패트릭 블랑 '수직정원'을 두르는 방법으로 겨우 보완했다. 1천300㎡ 넓이 콘크리트 벽에 175개 종 식물을 심는 작업이었다.

개관식 참석차 방한한 블랑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수직정원은 계속 살아 있으면서 자라는 생태계와도 같다"라면서 "이기대 해국을 비롯해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자라는 종을 선택해 심었다"고 설명했다.



널찍한 로비를 점령한 거대한 주황색 상자는 유명 독일 작가 토비아스 레베르거 설치 작품이다. 관람객들은 상자 안으로 들어가는 행위를 통해 작품을 적극적으로 지각하고 인지하는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부산현대미술관은 동시대 미술, 특히 그중에서도 미디어아트와 설치 작품 소개에 주력할 계획이다. 독립큐레이터 출신 김성연 관장은 "가급적 우리 미술관 예산을 들여 신작을 제작하는 커미션 프로젝트를 많이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공개된 개관전에서도 미디어아트와 설치 작품이 주를 이뤘다.

새로운 시공간 개장을 화두로 한 주제기획전 '미래를 걷는 사람들'에는 강태훈, 뮌, 첸 치에젠(대만), 준 응우옌 하츠시바(일본), 아피찻퐁 위라세타쿤(태국) 등 아시아 작가 5명(팀)이 참여했다.

4채널 비디오로 상영되는 치에젠 '잔향의 세계'는 일제 식민 시기 대만 한센병 환자들이 격리된 낙생요양원의 과거부터 현재를 다룬 작품이다. 거대 서사와 미시 서사가 교차하는 작품은 이미지 한 컷 한 컷이 강렬하다.



'아티스트 프로젝트'는 지하 1층과 1층에서 강애란, 전준호, 정혜련 등 작가 3명의 개인전을 선보이는 자리다. 정혜련 '-1의 풍경'은 LED 발광체가 만들어 내는 자유 곡선을 통해 낙동강 줄기를 은유한다.

정혜련 작가는 "낙동강 줄기와 그 유역에서 일어나는 당산제, 즉 마을 제사 이미지를 갖고 왔다"라면서 "당산제 현장을 돌아보고 주민들과 이야기하면서 그분들이 신성시하고 바라는 지점이 제가 생각하는 예술과 맞아 떨어진다"고 말했다.

1천400개가 넘는 나무막대가 천장에 매달린 채 몸을 떨어대는 스위스 작가 지문의 사운드 아트 작품도 강렬하다.

부산현대미술관은 광주시립미술관에 이어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한 두 번째 공공미술관이다. 부산시립미술관과 주요 갤러리들이 동부산 지역에 몰려 있다는 점에서 부산현대미술관 개관이 의미가 있다. 올해 9월 부산비엔날레도 부산현대미술관에서 개막한다.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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