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여왕' 숀다 라임스가 인생 리셋한 사연
자기 결점 극복한 솔직한 에세이 '1년만 나를 사랑하기로…'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그레이 아나토미'는 미드 팬이 아닐지라도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미국 TV 드라마다. 워낙 세계적인 인기를 끌어 의학 드라마의 대명사처럼 일컬어지기도 한다. 그 드라마 대본을 쓰고 제작까지 한 스타 작가 숀다 라임스의 에세이가 국내 번역 출간됐다. '1년만 나를 사랑하기로 결심했다'(부키).
라임스는 '그레이 아나토미'에 이어 '스캔들', '범죄의 재구성'까지 잇따라 히트시키며 TV 황금시간대를 점령해 '미드의 여왕'으로까지 불린다. 그런 그가 에세이를 냈다면 작가로서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일대기인가 예상하기 쉽지만, 이 책은 그런 내용이 아니다.
그는 역시 뛰어난 작가답게 그런 뻔한 스토리는 쓰지 않았다. 대신 이 책에서 자신이 성공한 이후의 삶을 솔직하게 들려준다. 그것은 흔히 상상하듯 화려하고 행복하기만 한 모습은 아니다.
그는 화려한 할리우드에서 스타 작가로 대접받고 유명인들을 쉽게 만날 위치가 됐다는 사실에 도취하기도 하지만, 어느 날 자신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누구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창의성을 지녔지만, 다른 면에서는 늘 서툴고 주눅이 들어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하고 삶을 제대로 즐길 줄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이를 깨닫고는 더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동안 용기를 내지 못해 거부하거나 외면한 것들을 '좋아, 해보자'며 정면으로 마주하는 '1년의 도전'(year of yes)이 이렇게 시작된다.
이 도전은 그가 20대 청춘이 아니라 40대 중반 나이에 시도하는 일이기에 특별하다. 나이가 들수록 삶의 태도를 바꾸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법이다. 게다가 그는 세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기도 하다. 일과 아이를 함께 돌봐야 하는 삶에서 스스로를 진지하게 바라볼 여유란 거의 허락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의미 있는 도전에 발을 내디디고, 한 걸음씩 옮겨 자신이 만족할 만한 모습으로 바꿔나간다.
모교인 다트머스대학 졸업식 축사를 해달라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늘 거절한 TV쇼 생방송에도 출연해 오래된 무대공포증을 극복한다. 이를 계기로 낯을 가리고 숫기가 없어 되도록이면 사람들을 피한 습성도 조금씩 나아진다.
그는 또 일을 하느라 아이들에게 소홀하다는 죄책감이나 완벽한 워킹맘처럼 보이도록 애쓴 모습도 떨쳐버린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 학부모회의에서 '반드시 집에서 만든 쿠키를 가져와 바자회에 참여하라'는 말에 "그게 무슨 개소리냐"고 항의한다. 언론 인터뷰에서 가정을 어떻게 꾸려가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완벽한 베이비시터가 있다"고 사실대로 말한다.
마음가짐뿐 아니라 몸도 돌보기 시작한다. 어느 날 비행기에 탔다가 안전벨트가 맞지 않을 정도로 살이 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체중감량을 고민한다. 자기 몸에 언제나 당당했지만, 그동안 일과 삶의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풀면서 어떤 문제나 상처를 덮어왔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렵게 다이어트에 도전한 그는 무려 58㎏을 감량한다.
싫다고 거절못하는 성격 탓에 그를 만만하게 보고 자꾸 돈을 빌려 가던 친구, 지인들과도 과감히 절연을 택한다. 이로써 그에게 진짜 중요한 사람들이 자연히 걸러진다.
이렇게 여러 가지가 달라졌지만, 그에게 가장 중요한 한 가지만은 달라지지 않아 그를 누구보다 빛나는 사람으로 만든다. 그것은 그가 '최.유.남(최초의, 유일한, 남다른)'으로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점이다. 그는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최초의 흑인 여성 작가로서 기존 대중매체의 편향된 가치관을 뒤흔들었다. 그 공로로 인권캠페인 평등동지상을 수상하면서 이렇게 연설한다.
"TV 드라마를 만들 때 왜 그렇게 '다양성'에 집착하냐고 기자들에게서도, 트위터에서도 수없이 질문을 받았어요. (…) 저는 다양성이라는 단어를 정말 싫어합니다. 뭔가 다른 것 같잖아요. (…) TV에서 여성과 유색 인종과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이 이례적인 일이라도 되는 듯한 느낌이잖아요. 저는 다른 단어를 씁니다. 일반화라는 단어를요. 저는 TV를 일반화하고 있어요. TV를 실제 세상처럼 보이게 만들고 있어요. 여성, 유색 인종, 성소수자가 인구의 50퍼센트도 훨씬 넘잖아요. 그러니까 특이한 게 아니죠. 저는 TV 속 세상을 일반적인 세상으로 만들고 있어요." (330쪽)
그는 모두가 완벽하다고 칭찬하는 애인의 청혼을 거절하고 자신에게 집중하기 위해 끝까지 '비혼'을 택한 뒤 독자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이 세상에 줄줄이 적힌 원칙 같은 건 없다. 원칙이 있다면 딱 한 가지. 원칙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살고 싶은 대로, 내면의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살면 행복해진다. 당위를 따르기보다 있는 모습 그대로 살면 행복해진다."
이은선 옮김. 432쪽. 1만5천800원.
min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