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소녀 살인사건에 獨 '거북이' 난민심사정책 도마위에

입력 2018-06-11 22:23
14세소녀 살인사건에 獨 '거북이' 난민심사정책 도마위에

1년 반 넘게 심사 대기중인 난민이 용의자

메르켈, '절차 개선' 요구로 비판론 무마 나서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독일에서 이라크 출신 난민이 14세 소녀를 성폭행 및 살인한 사건을 계기로 독일의 난민 관리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용의자가 장기간 망명 심사를 대기 중이던 난민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망명 심사 절차와 심사 대기 중인 난민의 관리 문제가 대두하고 있다.

특히 올해 초 15세 소녀가 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 소년에게 살해당한 사건에 이어 난민에 대한 정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미 반(反)난민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이번 사건을 정치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알리 B로 알려진 이라크 출신의 20세 난민 남성은 헤센주(州) 비스바덴에서 14세 소녀 성폭행 및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다.

지난달 22일 실종 신고된 희생자 수잔나 F는 지난 6일 비스바덴의 난민수용시설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친구들과 비스바덴에 여행을 갔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경찰은 유전자 감식을 통해 용의자들의 신원을 파악했다.

경찰의 신원파악에 앞서 알리 B는 지난달 31일 가족과 함께 터키를 거쳐 이라크로 돌아갔다가, 최근 현지에서 체포돼 독일로 송환됐다.

그는 이라크 수사당국에 사건 당시 술에 취해 있었고 약물을 복용한 상태여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2015년 10월 독일에 도착한 알리 B와 그의 가족은 망명 신청을 했으나 2016년 말 거부됐다.

이에 재심을 신청해 비스바덴의 난민수용시설에서 대기 중이다가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이 때문에 망명 심사 기간이 지나치게 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알리 B도 1년 반 넘게 심사 대기 중인 셈이었다.

베를린의 경우 지난해 말 망명 신청한 난민이 현재 심사 결과를 받으려면 여전히 1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고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가 11일(현지시간) 전했다.

최근 연방이민난민청(BAMF) 브레멘 사무소가 뇌물을 받고 1천여 명의 난민에게 망명을 승인한 혐의를 받는 것은 망명 심사 과정의 난맥상을 보여주는 사례다.

망명 심사 과정이 길고 결과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난민은 뇌물로 해결하려 했고, 공무원들은 뇌물의 유혹에 넘어갔다는 지적이다.

결국, 난민 관리의 난맥상이 범죄를 유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 셈이다.

망명 심사를 대기 중인 난민은 언어교육과정과 직업훈련에 대한 접근도 제한돼 거주 기간 독일 사회에 적응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알리 B와 그의 가족도 망명 신청이 거부된 이후 독일어 교육을 받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언론은 난민수용시설에서 마약 거래가 상당히 일어나고 있다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

가뜩이나 BAMF 브레멘 사무소의 망명 심사 의혹이 '난민 스캔들'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이번 사건이 발생하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공영방송 ARD와의 인터뷰에서 망명 심사제도의 단점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면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혀 조기 진화에 나섰다.

그는 "빠르게 심사가 진행돼 허가를 받지 못한 난민은 신속히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는 또한, 대연정 협상의 합의 내용으로, 망명 심사 대기 전문 기관인 난민수용센터를 조속히 건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lkb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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