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회담 D-2] 싱가포르행 김정은, 中이외 국제무대 첫 데뷔

입력 2018-06-10 13:56
[북미회담 D-2] 싱가포르행 김정은, 中이외 국제무대 첫 데뷔

정상국가 위해 기존 틀깨며 외교 올인…김정일 프레임서 탈피



(서울=연합뉴스) 최선영 기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0일 싱가포르에 첫발을 내딛는 걸로 국제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한다.

12일 세계 초강대국 미국과 '세기의 회담'을 치르기 위해 싱가포르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서방의 외교무대에 처음 공식 데뷔하는 셈이다.

2012년 집권한 김정은 위원장의 해외나들이는 이웃인 중국 방문 두 차례뿐이다. 여기에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판문점 남측지역을 다녀갔지만, 서방 무대에 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단순한 데뷔가 아니다. 지난 70년간 첨예하게 대립해온 '적국' 미국의 최고지도자와 화해의 손을 잡을지 결단해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부친이 물려준 '가난에 찌든' 나라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강한 욕망과 '체제 수호의 강력한 보검'으로 내세웠던 핵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처지다. 전자를 취하고 후자를 버리는 결단이 필요하며, 그럼으로써 북미관계 정상화로 갈 수 있는 대장정에 나선 셈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1984년 1월 8일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용희씨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강력한 일인 통치자의 아들로 '황태자' 수저를 물고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일반 북한 주민이 상상할 수 없는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살아왔다.

부친이 여러 부인을 둔 탓에 어릴 적부터 모친의 권력 지향적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고 권력 장악을 위해서는 경쟁자를 제거하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부터 배웠다. 고모부 장성택과 이복형 김정남을 제거한 배경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10대 중반에 최고의 선진국 스위스의 베른에서 평범한 공립학교에 다니면서 선진 문물을 익혔다.

스위스 학교에서 가르치는 세계사 등 미국과 서방세계에 대한 다양한 수업은 모든 것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10대 김정은 위원장의 두뇌에 고스란히 입력됐다.

황태자의 신분을 숨기고 평범한 외국인으로 미국과 서방에 대한 교육을 아무런 제한 없이 받았던 스위스 시절의 교육은 그가 최고지도자에 오른 이후 정치 행보에 상당히 녹아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내내 "인민들에게 남부럽지 않은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을 마련해주겠다"는 열망을 표출해왔다. 2014년 시장의 완전 허용이라는 파격적 조처를 한 것도 마식령스키장, 원산 관광지 건설 등도 스위스에서 경험이 영향을 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어릴 적 받은 자본주의 교육은 그에게 정치적 이념보다 실리를 중시하고 주민의 삶을 풍족하게 만들고 싶다는 욕구를 가진 지도자로 성장하는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늘의 중국을 만든 덩샤오핑(鄧小平)의 성장에 청년시절의 프랑스 유학이 지대한 영향을 준 것과 유사하다.

정부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서구에서 유학했다는 사실은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가장 큰 차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김정은 위원장이 가진 과감성, 솔직함도 첨예하게 대치했던 한반도의 정세를 변화시킨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권력을 지키기 위해 혈육을 제거하는 냉혹함을 보이면서도 국제사회에서 정상국가로 살아가려는 목표를 향해 기성의 틀을 깨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두 차례의 남북 및 북중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모두 김정은 위원장이 제의한 것으로, 그가 주도적으로 정세 변화를 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북한이 지난달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비난 발언에 따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취소 발언에 불과 9시간 만에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을 내세워 '공손하게' 그의 마음을 돌려세우려는 모습은 실리를 위해 주저하지 않는 스타일을 그대로 드러냈다.

'강경'에 '초강경'으로 맞서던 것이 김정일 위원장 시절의 외교 프레임과는 천양지차라고 할 수 있다.

잘못됐다고 인식되면 머뭇거리지 않고 즉시 바로 잡으려는 김정은 위원장의 스타일도 자주 읽힌다.

또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5월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취소로 북미정상회담에 난관이 생기자 주저하지 않고 문재인 대통령과 2차 정상회담을 제의했다.

북한 매체는 김 위원장이 북미정상회담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문재인 대통령의 노고에 사의를 표했다"고 공개했다.그동안 북한의 외교 언어가 '자주'나 '주체'였다는 점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솔직함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결국, 젊은 지도자 김정은 위원장의 파격적 스타일은 트럼프 대통령과 담판에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등의 결단으로 세계사에 길이 남을 성공적인 담판으로 이어질 발판이 될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한 고위층 탈북자는 "김정은 위원장은 꼼수에 능한 부친과 분명 다르다"며 "30대 중반의 젊은 패기와 거리낄 것 없는 황태자 신분으로 최고 권좌에 오른 만큼 이번 회담에서 파격적 결단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어린시절 경험한 세계의 부국 스위스 같은 부흥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담판에서 어떤 결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chsy@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