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진보를 다시 고민하는 미국
신간 '위험한 민주주의'·'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현대 자유민주주의 본산이라고 할 미국에서 민주주의와 진보정치에 대한 새로운 기획을 요구하는 지식인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들을 각성시키고 영감을 제공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하버드대 정치학 강사이자 미국 싱크탱크 뉴 아메리카 재단 수석연구원인 야스차 뭉크는 신간 '위험한 민주주의'(와이즈베리 펴냄)를 통해 1991년 소련이 무너진 후 전 세계를 석권한 자유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한다.
하나로 생각했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분리되면서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반자유적 민주주의'로 변해가고 있다고 것이다.
그는 최근 세계적으로 득세하는 '권위주의적 포퓰리스트'들을 민주주의에 내재한 위기를 보여주는 뚜렷한 증후라고 본다.
여기에는 도널드 트럼프를 위시해 영국의 나이절 패라지, 독일의 프라우케 페트리, 프랑스의 마린 르펜,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 폴란드의 야로슬라프 카친스키, 그리스의 알렉시스 치프라스 등이 포함된다.
이들은 복잡하게 얽힌 정치·사회문제를 단순화시켜 불만을 외국과 외국인, 타인종, 소수 집단에게로 돌림으로써 대중을 효과적으로 선동하고 지지를 얻고 있다고 분석한다. 아울러 자유가 아닌 위계질서가 민주주의 중심이라고 믿는 것도 이들의 공통점이라고 지적한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포퓰리즘의 확산 배경으로는 소셜미디어의 등장과 경제 침체, 민족적·문화적 다원성 확대를 든다.
소셜미디어 자체에 모종의 정치적 편향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정치 비용을 급감시키고 중앙과 주변부의 기술 격차를 좁힘으로써 불안을 조성하고 기존 질서를 흔드는 선동이 먹힐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앞서 장기 고성장으로 생활 수준을 향상시켰던 경제의 침체로 인한 불안감과, 세계화에 따른 이민의 증가로 인종적·민족적 동질성이 해체되는 데 따른 불만도 민주주의에 균열을 야기하는 요인으로 본다.
야스차 뭉크는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불평등을 완화하고 시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게 경제를 뜯어고치고, 새롭게 대두한 민족주의를 순화하고 길들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에 대한 신뢰를 다시 세우고 허황한 선동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민주적 시민을 키워내기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함규진 옮김. 464쪽. 1만6천원.
마크 릴라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인문학 교수는 신간 '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필로소픽 펴냄)에서 미국 진보정치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실패 원인을 분석하고 새로운 기획을 제안한다.
그는 1980년대 레이건 체제가 출범한 이래로 미국 진보진영은 시민들이 기대하는 정치적 비전과 대안을 보여주지 못한 채 파편화한 '정체성 정치'에 매몰됨으로써 고립을 자초했다고 분석한다.
성소수자 운동, 페미니즘, 인종주의 등 소수집단을 대변하는 정체성 정치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극도의 편협함을 드러내 연대, 공동체, 공적 의무를 무력화시키고 개인주의를 강화함으로써 분열과 탈정치화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권장하는 정체성 정치는, 시선을 바깥세상이 아닌 자신의 내부로 향하게 하는, 급진적인 개인주의에 지적인 멋을 부여하는 사이비정치에 다름 아니라고 꼬집는다.
마크 릴라 교수는 21세기 미국 진보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체성 정치를 넘어서야 한다며 그 출발점으로써 공통의 미래를 상상할 줄 아는 진보적 시민을 만들기 위한 교육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진보정치에 혁신의 발판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한다.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은 진보주의자들과 급진진보주의자들이 비축한 에너지를 방출되게 만들었다. 자신들 안에서 그런 에너지를 발견하고 그들 스스로 깜짝 놀라는 듯하다. 왼쪽에서 온 대중적 물결이 오른쪽에서 온 대중영합주의적 물결에 맞서 치솟는 모습은 고무적이다. … 우리의 장기적 야망은 진정으로 진보적 가치관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모든 시민이 시민으로서 호응하는 미국의 비전을 개발하는 것이어야 한다."
전대호 옮김. 160쪽. 1만4천500원.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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