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전쟁' 중국이 1조2천억달러 美국채 안 파는 이유는
2014년 금융 혼란으로 미 국채 보유 중요성 깨달아
"경상수지 악화·대외채무 증가 등 대비 안전한 유동자산 필요"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중국이 1조2천억 달러(약 1천300조원)에 달하는 미 국채를 '무기'로 사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6일 진단했다.
미국의 최대 채권국인 중국은 작년 말 기준 1조2천억 달러에 달하는 미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 전체 미 국채의 8%에 달하는 규모다. 중국이 미 국채 매각에 나선다면, 미 국채 가격은 크게 떨어지고 반대로 국채 금리는 급등할 수 있다.
이는 시중금리의 전반적인 상승을 불러와 미국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중국의 미 국채 매각을 무역전쟁의 '원자탄'이라고 보는 시각이 여기서 나온다.
하지만 미국과 무역 갈등이 격화하는 와중에도 중국 정부는 단 한 번도 미 국채 매각을 검토한 적이 없다고 한 소식통은 전했다.
이러한 확고한 신념은 2014년 심각한 금융 혼란을 겪었던 중국 정부의 뼈아픈 경험에서 나온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안전자산으로서 미 달러와 국채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자 중국 정부는 적극적인 보유외환 다변화에 나섰다.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를 창설하고 국가외환관리국(SAFE) 산하에 해외 투자 펀드를 만들어 해외 부동산과 주식 투자 등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여기에는 보유 외환이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의 보유 외환은 2014년 6월 4조 달러에 육박해 정점을 찍은 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지난해 1월에는 3조 달러 선이 붕괴했다. 위안화 가치절하 등으로 외국자본이 중국을 빠져나간 탓이었다.
비상이 걸린 중국 정부는 민간기업의 방만한 해외 기업 인수를 무산시키고 자본 유출을 엄격하게 단속하는 등 철저한 외환 통제에 나섰다. 안전자산으로서 달러의 중요성도 절실히 느꼈다.
영국의 국제경제 전문가인 앨런 휘틀리는 "이러한 금융 혼란으로 중국 정부는 위기의 순간에 언제라도 매각해 유동화할 수 있는 안전자산인 미 국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1년 반 동안 중국의 보유 외환은 안정세를 보여 3조1천억 달러 선을 유지하고 있지만, 또 다른 그림자가 중국 경제에 드리우고 있다. 바로 경상수지 악화와 대외채무 증가이다.
중국의 올해 1분기 경상수지는 282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해 눈부신 성장을 거듭한 지 17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1분기 무역수지는 534억 달러 흑자였지만, 서비스수지에서는 762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중국이 수출입에서 흑자를 거뒀을지라도 이를 관광, 유학, 이자·배당금 지급 등으로 모두 써버렸다는 얘기다.
이는 중국의 대외채무 증가와도 관련 있다. 중국의 대외채무는 작년 말 1조7천억 달러로 전년보다 3천억 달러 늘어났다.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올해 1분기 대외 차입액은 2천220억 달러로 대출액(650억 달러)보다 훨씬 많았다.
더구나 미국의 잇따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신흥국에 위기의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도 우려를 키운다.
중국 중앙재경대학 리지에 교수는 "지금 아르헨티나와 터키의 어려움에서 볼 수 있듯 미 금리 상승기 때마다 신흥시장은 위기를 겪었다"며 "중국 정부는 위안화 환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충분한 유동자산을 보유해야 하는데, 미 국채보다 유동성이 뛰어난 자산은 없다"고 말했다.
ss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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