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쓸어내린 용산 건물 붕괴…'제도는 있지만 실행은 안 돼'

입력 2018-06-05 16:28
가슴 쓸어내린 용산 건물 붕괴…'제도는 있지만 실행은 안 돼'

(세종=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 서울 용산의 4층짜리 상가 건물이 갑작스럽게 무너져 내려 노후 건물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장 감식에서 폭파나 화재 등 외력으로 인해 무너졌을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파악됨에 따라 구조 안전 문제가 큰 것으로 보인다.

이 건물에는 칼국숫집이 있었는데 인근 직장인들 사이에서 꽤 인기가 좋아 문 밖에 줄을 설 정도였다고 한다. 평일에 건물이 무너졌으면 큰 참사로 이어질 뻔했다.

건물 안전 기준이나 제도는 갈수록 강화되고 있지만 안전점검은 민원 제기 때문에 여전히 대형 건물 위주로 운영되고 있고, 특히 재개발 등 정비사업 추진지역은 건물이 무너질 정도로 낡아도 보강공사가 이뤄지기 어렵다.

용산 건물 붕괴는 이 두 사안이 결합해 발생한 것으로, 장기 정비사업 추진지역에서의 노후 건물에 대한 안전을 확보하려면 지자체의 더욱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쉽지 않은 소형 건물 안전관리

노후한 건축물 등의 안전을 점검하는 내용을 규정한 법은 '시설물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시특법)과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법), '건축법' 등 세가지다.

시특법은 사회간접자본(SOC) 등 대형 건축물을 중심으로 안전관리 규정을 총괄하는 법이다.

지자체가 노후 건물을 규모에 따라 1·2·3종 시설물로 지정하면 관리 주체가 건물에 대한 안전점검과 보수공사 등을 하게 된다.

원래 시특법은 대형인 1·2종 건축물만 대상으로 했으나 올해부터는 그보다 작은 규모인 3종 시설물도 관리 대상에 편입됐다.

그러나 3종 시설물도 판매시설의 경우 연면적이 1천㎡는 넘겨야 해 300㎡ 조금 넘는 수준의 용산 붕괴 건물은 해당 사항이 아니다.

물론 정부나 지자체가 재난예방을 위해 안전관리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시설물에 대해서는 규모에 상관없이 3종 시설물로 지정할 수 있다는 예외규정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시특법은 워낙 규제가 강력하다.

지자체가 실태조사를 통해 대상으로 고시하면 건물주 등 관리 주체는 1년에 두세번씩 건물에 대한 안전점검을 벌이고 필요하면 보강공사도 해야 해 적지 않은 경제적 부담을 지게 된다.

이 때문에 소형 건축을 시특법 대상으로 지정하는 데 지자체가 주저할 수밖에 없다.

현재 지자체들이 3종 시설물을 지정하기 위해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지난달까지 등록된 3종 시설물은 5천여곳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국토부는 민간 건축물에 대해서는 9월까지 3종 시설물로 일괄 등록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재난법은 지자체가 구조상 위험한 건물을 찾아내면 안전점검과 보강공사를 시키거나 긴급하다고 판단될 경우 퇴거까지 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용산 건물 붕괴 이후 서울시가 정비구역으로 지정됐지만 철거가 늦어진 309곳을 대상으로 노후 건축물 긴급 안전점검을 벌이는 것도 이 재난법을 근거로 한 것이다.

건축법도 안전에 취약하거나 재난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는 소규모 노후 건축물은 지자체가 직권으로 안전점검을 하거나 관리주체에게 안전점검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결국 시특법과 재난법, 건축법에는 용산 건물의 붕괴를 방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마련돼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제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이들 법도 무용지물이다.

지자체로서도 사유재산에 공권력을 투입하고 경제적 부담을 지우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 영세 소형 건물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지자체에 비용을 지원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특히 용산 건물은 2006년 지정된 용산 재개발 5구역에 포함돼 있다.

기왕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건물에 대해 안전진단을 벌이고 보강을 요구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크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는 지자체가 정비사업이 단계별로 일정 시간 내에 진도를 내지 못한 경우 정비구역을 해제하는 일몰제가 규정돼 있고 아예 지자체가 직권으로 지정을 취소하는 근거도 마련돼 있다.

그러나 이 경우는 조합원 간의 갈등으로 사업이 성사될 가능성이 크지 않을 때가 많다.

조합이 건재하게 운영되면서 사업을 계속 추진하는 곳에 대해서는 정비구역 해제가 여의치 않다.

국토부 관계자는 "노후 건물의 붕괴 위험을 차단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받침은 있지만 민원을 이유로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관계 부처와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30년 이상 된 노후 건물 전국 260만동

문제는 용산 건물 붕괴가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작년 말 기준으로 준공 후 30년 이상된 건축물은 전국 260만1천270동으로 전체의 36.5%를 차지했다.

지역별로 수도권은 52만1천631동(26.3%), 지방은 207만9천639동(40.4%)이 30년 이상 된 노후 건물로 집계됐다.

지방에 있는 오래된 건축물의 절반(50.5%)은 주거용이며 그 다음으로 상업용(25.2%), 문교·사회용(18.9%), 공업용(14.1%) 등 순이다.

수도권도 주거용(31.2%), 상업용(24.1%), 문교·사회용(16.1%), 공업용(8.6%) 등 순이다.

인구가 밀집한 서울의 경우 저층 주거지를 중심으로 주택 노후현상이 심화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작년 1월 기준으로 서울 주택 44만9천64동 중 30년 이상 된 노후 주택은 16만7천19동(37.2%)이다.

단독주택은 31만8천440동 중 15만991동(47.4%)이 30년 이상 됐다.

강북구 미아동이 4천610동(53.6%)으로 가장 많고 성북구 장위동 3천722동(67.1%), 관악구 신림동 3천469동(31.0%) 등 순이었다.

공동주택의 경우 13만624동 중 노후 주택은 1만6천108동(12.3%)이다.

노후 공동주택의 80%가 5층 미만의 연립·다세대주택으로, 저층 주택을 중심으로 노후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후 공동주택은 양천구 신월동 592동, 마포구 아현동 400동, 관악구 봉천동 385동 등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한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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