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판매 없었나…中회사채 부도에 국내 펀드 '날벼락'

입력 2018-06-03 06:01
불완전판매 없었나…中회사채 부도에 국내 펀드 '날벼락'

증권ㆍ자산운용ㆍ신평사 서로 책임 전가 급급

(서울=연합뉴스) 박상돈 유현민 기자 = 중국 에너지 기업인 중국국저에너지화공집단(이하 CERCG)의 자회사가 발행한 회사채 부도로 국내 금융권이 시끄럽다.

CERCG의 또 다른 자회사가 발행한 회사채도 채무불이행에 빠지면서 이 회사채를 기초자산으로 국내에서 발행된 1천650억원 규모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발행 주관사와 신용평가사, 해당 ABCP를 산 금융사들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느라 마찰음이 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260억원어치는 자산운용사가 시중에 출시한 3개 공모펀드에도 편입돼 개인 투자자들의 손실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ABCP는 특수목적회사(SPC)가 채권, 부동산 등의 자산을 담보로 발행하는 기업어음으로, 해당 담보자산이 부도를 내면 투자액을 모두 떼일 수도 있다.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중국교통은행은 중국국저에너지화공집단(CERCG)이 지급보증한 홍콩 자회사 CERCG캐피탈의 달러표시 채권에 '크로스디폴트'(Cross Default)가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CERCG가 지급보증한 또 다른 자회사 CERCG오버시즈캐피탈의 3억5천만달러(약 3천800억원) 규모 채권이 부도나면서 동반 채무불이행 상태가 된 것이다.

앞서 한화투자증권[003530]과 이베스트투자증권[078020]은 지난달 8일 SPC '금정제십이차'를 통해 크로스디폴트가 발생한 CERCG캐피탈 회사채를 기초자산으로 ABCP 1천650억원어치를 발행했다.

현대차투자증권[001500]을 비롯한 증권사 3곳이 이 물량을 바로 인수했고, 이 중 일부는 다시 KB증권과 유안타증권[003470], 신영증권[001720], KTB자산운용, 골든브릿지자산운용 등에 팔렸다.

기초자산 채권의 크로스디폴트로 ABCP의 부도 우려가 제기되자 이들 채권단은 우선 신용평가사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와 서울신용평가가 CERCG를 중국의 공기업으로 분류하고 해당 ABCP에 각각 'A2'를 부여하는 등 제대로 된 평가를 하지 못했다는 판단에서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ABCP 발행 후 3일 만에 CERCG가 보증한 다른 채권이 부도가 났는데도 신평사는 이 회사를 공기업으로 분류해 높은 등급을 부여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신평사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나이스신평은 지난 1일 낸 자료에서 "중국 공기업의 차이와 특성을 충분히 고려했다"면서 "또 A2 이상의 신용등급을 받았더라도 부도는 얼마든지 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채권에 대한 CERCG의 지급보증이 왜 이뤄지지 않았는지가 문제의 핵심"이라며 "CERCG와 면담을 통해 향후 CERCG가 지급보증한 채무에 대한 대응 방안 등을 파악해 시장에 신속하게 공유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나이스신평과 서울신평은 기초자산 채권에 크로스디폴트가 발생한 지난달 28일 바로 ABCP의 신용등급을 상환능력이 불투명하다는 의미의 'C'로 하향 조정했다.

채권단들은 ABCP를 발행한 한화투자증권과 이베스트증권에도 불완전판매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채권단에 포함된 다른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ABCP 발행 3일 만인 지난달 11일 CERCG가 지급보증한 또 다른 채권의 부도가 났다"면서 "이런 징후를 발행 주간사가 알고서도 고지하지 않았다면 불완전판매에 해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화투자증권 관계자는 "ABCP 발행 주간사로서 나이스신평이 평가한 신용등급을 토대로 관련 업무를 진행했고 부도 징후를 전혀 몰랐다"면서 "자체 리스크 심사 능력을 갖춘 기관만을 상대로 판매해 불완전판매는 있을 수 없다"고 해명했다.



어찌 보면 가장 큰 피해자는 특별한 잘못 없이 금융 시스템을 믿고 관련 펀드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본 개인 투자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해당 ABCP에 투자한 공모펀드는 KTB자산운용의 'KTB전단채'와 골든브릿지자산운용의 '골든브릿지스마트단기', '골든브릿지으뜸단기' 등 3종이다.

각 펀드가 문제의 ABCP를 편입한 규모는 KTB전단채 펀드가 200억원, 골든브릿지운용의 2개 펀드는 60억원 정도다.

이 가운데 지난달 30일 현재 설정액 규모가 4천억원으로 제일 큰 KTB전단채 펀드는 ABCP의 상각 처리 여파로 최근 1주일 수익률이 -3.85%를 기록했다. 이 펀드는 전체 투자자의 80% 정도가 개인 투자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KTB자산운용은 지난달 29∼30일 이 펀드의 환매를 중단하고 ABCP 투자금의 80%를 상각처리한 뒤 같은 달 31일부터 환매를 재개해 지난 1일 현재까지 1천억원 넘게 환매했다.

환매에 나선 투자자들은 기존 수익률에서 상각으로 인한 손실분만큼을 뺀 수준에서 손익을 확정 짓게 된다.

ABCP를 보유한 증권사들도 2분기 중 손실처리나 충당금 설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채권단의 다른 관계자는 "각사의 입장을 정리한 뒤 CERCG의 재무상태와 자금회수 능력, 상환 의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속하게 공동 대응할 것"이라면서도 "ABCP 발행 과정에 신평사의 '필터링'이 제대로 됐는지도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지금은 서로 책임을 미루기보다 CERCG가 지급보증한 채권을 어떻게 회수할 수 있느냐에 노력을 집중할 때"라며 "4일로 예정된 채권단과 CERCG의 면담 이후 추후 사태 전개의 가닥이 잡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aka@yna.co.kr, hyunmin6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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