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김영철 면담, 클린턴-조명록 만남 연상…이번엔?
긍정흐름속 트럼프, 12일 싱가포르 정상회담 개최 확인 가능성
(서울=연합뉴스) 지성림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뉴욕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회담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백악관으로 불렀다.
워싱턴 현지시간으로 1일 백악관을 방문할 김영철 부위원장은 '주군'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지참하고 간다.
비핵화와 체제안전보장을 핵심 이슈로 김영철-폼페이오 간 140분간 압축담판을 통해 서로 최대치를 공감한 만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리인인 김 부위원장을 통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아직 합의하지 못한 문제에 대해 '결단'을 전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근래 북미 간 대화 흐름이 긍정적이기는 하지만 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은 여전히 '취소된' 상태이며,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보고서 '결자해지'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긍정적인 기대를 한다면 김영철 부위원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취소를 취소하는' 선언을 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18년 전 빌 클린턴 대통령과 조명록 당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만남을 떠올리게 하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김영철 부위원장 면담은, 그때와 상황이 유사한 것 같으면서도 질적으로 차이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주목할 대목은 2000년 10월 10일(현지시간) 미 국무부에서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과 회담을 마친 뒤 곧바로 백악관으로 가서 클린턴 대통령을 만났던 조명록 제1부위원장은 결국 목적 달성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가 방북 초청을 담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으나, 당시 미 행정부의 교체에 따른 격변에 따라 임기 말의 클린턴 대통령은 북한을 찾지 못했다.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재조명해보면 우선 조명록 제1부위원장의 방미 기간에 북미 양측은 적대관계 종식, 평화보장 체제 수립, 미 국무장관의 방북 등을 골자로 하는 '북미 공동코뮤니케'를 채택하는 등 화해무드가 조성됐다.
같은 해 10월 23∼25일에는 올브라이트 장관이 클린턴 대통령 방북을 준비하기 위해 미 국무장관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북한을 찾아 김정일 위원장을 예방했다. 이로써 첫 북미 정상회담은 성사 문턱에까지 다다른 듯했다.
그러나 2000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가 승리하면서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미국 내 비판 여론은 더욱 거세졌고 결국 클린턴 대통령은 시간 부족 등을 이유로 방북 계획을 취소했다.
조명록 제1부위원장의 방미는 물론 그 후 진행된 북미 양국의 화해 조치를 북한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등 기대가 컸지만 결국 큰 실망으로 귀결됐다.
이런 경험이 있는 탓에 북미 모두 '신중 모드'가 읽힌다.
서로 상대의 '패'를 더 꼼꼼히 따져보고 가는 기색이 역력하다. 특히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해온 트럼프 미 행정부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고 있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영철 부위원장을 백악관으로 부른 것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중을 다시 타진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사실 북한의 핵 능력은 2000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도화됐다. 18년 전 보다 핵무기 수는 물론 탄두 경량화, 미 본토까지 겨냥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등에 어느 정도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번 북미 비핵화 협상은, 미국으로서도 더는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됐고 비핵화로의 대전환 의지를 밝힌 북한으로서도 적극적으로 풀어야 할 긴급 현안 과제가 된 셈이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2000년 북미 정상회담을 논의할 때는 북한 비핵화 의제가 없었지만, 이번에 추진되는 정상회담은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맞바꾸는 빅딜"이라며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타 북미 정상회담을 향해 달려가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상황을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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