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② 루가노, 헤세가 머문 소도시
(루가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스위스 남부 티치노주에 있는 루가노는 인구 6만8천 명의 소도시다. 잔잔한 호수를 마주한 이곳에서는 호반과 좁은 골목을 따라 걷고, 맛좋은 음식을 즐기며 평온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독일 대문호 헤르만 헤세의 자취도 찾을 수 있다.
루가노는 루체른에서 남쪽으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있다. 하지만 두 도시 사이에 있는 멋진 경치를 놓치고 싶지 않다면 루체른~플뤼엘렌~루가노로 이어지는 루트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이동시간은 두 배가 훌쩍 넘지만 아름다운 풍광과 휴식 같은 시간을 약속한다.
루체른에서 유람선에 오르면 플뤼엘렌까지 유유자적 이동하며 호수와 설산이 이룬 맑은 풍경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유레일 패스 이용자는 예약비만 내면 유람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플뤼엘렌에서 루가노까지 2시간 거리는 풍경 열차인 고타드 파노라마 익스프레스를 이용한다. 천장 좌·우측과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거대한 계곡의 수려하고 아찔한 풍광을 눈에 담을 수 있다.
◇ 아기자기한 도심과 공원
루가노에 도착하자 기온이 훌쩍 높아졌다. 마치 여름을 느끼게 한다. 또 달라진 것이 있다. 말이 독일어에서 이탈리아어로 바뀌었고, 건물 모양과 음식도 이탈리아식이다. 거리마다 빠르고 경쾌한 이탈리아어가 귓가를 울렸다.
현지 가이드인 패트리샤는 "루가노는 알프스 북쪽과 달리 이탈리아어를 사용하고 건물도 이탈리아식"이라며 "알프스는 지금도 두 지역의 왕래를 제약하는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루가노의 중심지는 호수 북쪽의 왼편에 형성돼 있다. 음식점과 카페가 즐비하고, 작은 광장 주변으로 쇼핑가가 있다. 비좁은 골목을 따라 걸으면 파스텔톤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을 볼 수 있고 식당에서 새어 나오는 피자, 파스타 등의 구수한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특히 햇볕이 좋은 날에는 '콘트라스트의 도시'라는 별칭에 걸맞게 빛과 어둠이 명확한 풍경이 시야를 채운다.
도심 동쪽으로는 호수를 바라보는 초록빛의 치아니공원이 있다. 규모는 루가노의 도심과 거의 비슷하다. 공원에는 고풍스러운 이탈리아식 건물과 자연사박물관, 도서관이 들어서 있다. 이곳의 백미는 호반 산책로. 평화로운 호수를 배경으로 형형색색 아름다운 꽃과 초록 빛깔 나무가 마음에 안식을 가져다준다. 산책로 끝에 있는 앙증맞은 모래사장에서는 수영복 차림의 사람들이 일광욕하며 쉬고 있는 평온한 일상도 엿볼 수 있다.
루가노를 보면 꽤 가파른 비탈에 집들이 들어서 있다. 어쩌자고 저런 곳에 집을 지었나 싶지만 경치는 좋을 듯하다. 루가노의 전경을 감상하려면 비탈의 끝에 있는 몬테 브레 또는 몬테 산 살바토레를 방문해야 한다. 푸니쿨라(산악기차)를 이용해 꼭대기에 오르면 호수가 발아래 펼쳐지는 시원한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 헤세의 숨결 깃든 몬타뇰라
도심에서 버스로 15분 정도 가면 닿는 몬타뇰라는 비탈에 들어선 집들과 골목 풍경이 예쁜 시골 마을. 특히 '데미안' '유리알 유희' '수레바퀴 밑에서' 등을 쓴 독일 문호 헤르만 헤세(1877~1962)가 42세부터 약 40년간 머물다 세상을 떠난 곳으로 유명하다. 헤세는 몬타뇰라에서 그토록 원했던 평화를 찾았다고 전한다.
헤세가 살던 집 인근 4층짜리 건물이 헤세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박물관은 헤세가 1919년부터 알프스 남쪽에서 보낸 40년의 세월 속으로 방문객을 인도한다. 건물 정면을 보면 페도라를 쓰고 동그란 안경을 낀 노년의 헤세가 사진 속에서 묘한 눈길로 방문객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엽서와 책, 기념품을 파는 공간을 지나면 헤세의 생애 속으로 떠나는 여행이 시작된다. 박물관에는 몬타뇰라의 풍경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과 그가 그린 인물이나 풍경 스케치와 그림, 물감, 붓과 팔레트, 크레용 등이 전시돼 있다. 햇살 잘 드는 창가에 놓인 책상에는 헤세가 사용한 타자기가 놓여 있고, 한쪽에서는 그가 쓰던 페도라도 볼 수 있다.
몬타뇰라에는 '헤르만 헤세의 길'이 있다. 생전에 그가 즐겨 걷던 길이다. 박물관 그림 속에 있던 풍경, 헤세가 살던 집 등을 볼 수 있다. 인적 드문 시골 마을의 길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헤르만 헤세의 길을 모두 걸으면 2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다고 하니 트레킹 루트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박물관에서 10여 분 걸어 내려가면 생아본디오 교회가 나타난다. 초록빛 들판에 사이프러스 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 도열해 있고, 그 끝에 높은 종탑을 가진 생아본디오 교회가 들어서 있다. 꽤 멋진 풍경이다. 교회 맞은편에는 생아본디오 묘지가 있다. 헤세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묘지 한쪽 그의 이름과 생몰 일자가 새겨진 조그만 사각형의 비석 앞에는 꽃이 핀 작은 화분 2개가 놓여 있었다.
[취재협조] Ente Turistico del Luganese(www.luganoregion.com)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dklim@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