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지능에 학습능력까지…숨어있던 식물의 비밀
신간 '춤추는 식물'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열대 지방에서 자라는 콩과 식물인 미모사 푸디카라는 건드리면 벌어진 잎들을 재빨리 오므리고 마치 죽어가는 나무처럼 잎과 가지를 아래로 축 늘어뜨린다.
파리지옥이나 끈끈이주걱 같은 식충식물이 널리 알려진 터라, 미모사의 동물적 반응이 그리 놀랍진 않다. 그런데 2013년 한 호주 생태학자가 행한 실험에서 미모사는 지능을 가진 동물과 같은 놀라운 반응을 나타냈다.
일정한 시차를 두고 화분을 반복적으로 떨어뜨리는 자극을 가하자, 미모사는 예의 잎을 닫는 반응을 보이다가 4~5차례부터는 마치 낙하해도 안전하다는 판단을 한 듯 더는 자극에 반응하지 않았다.
연구자는 보강된 실험을 거쳐 미모사가 동물처럼 학습한 내용을 기억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최근 보고된 연구결과들은 식물에도 의식과 지능이 존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신간 '춤추는 식물'(원제 The Cabaret of Plants·글항아리 펴냄)은 구석기 동굴벽화 속 식물부터 고대, 중세, 근대 그리고 현대 식물학계의 최신 연구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식물이 만나는 주요 장면들을 되짚어봄으로써 식물의 존재론적 의미를 재발견한다.
저자는 영국을 대표하는 자연 작가인 리처드 메이비로 베스트셀러이자 식물학의 바이블로 꼽히는 '대영 식물 백과사전'을 썼다.
4만 년 전 그려진 구석기 동굴벽화에는 생동감 넘치는 갖가지 동물 그림이 담겼으나 희한하게도 식물 이미지는 극히 드물다.
프랑스 인류학자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구석기인들의 그림을 먹잇감의 재현이 아니라 사유의 결과물로 봤다. 저자는 그 연장선에서 구석기인들은 식물을 살아 있는 존재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릴 생각도 하지 못했다는 해석을 내린다.
그러다 신석기 농경과 함께 고립과 소유의 개념이 생겨나면서 식물은 본격적으로 인류 문명 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중세 사람들은 식물과 인체의 외적 유사성을 기준으로 식물 효능을 상상하며 약재로 사용했으며, 식민지 개척시대 식물은 탐험가들의 전리품이자 수집품이었다.
근대 낭만주의와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식물은 회화의 중심 소재로 등장했으며, 대중의 호기심과 과학자들의 연구열을 자극하는 과학적 탐구 대상이 됐다.
포획 능력을 갖춘 식충식물의 발견은, 우주 만물이 맨 꼭대기 신에서 맨 아래 바위에 이르기까지 엄격한 위계질서의 지배를 받는다고 봤던 전통적인 관념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과학 혁명은 아이러니하게도 대중의 관심을 식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특히 유전학의 발전은 식물학을 실험실로 밀쳐내는 역할을 했으며, 식물은 큰 관심을 끌지 못하는 장식물로 전락했다.
그러나 최근 쏟아진 연구결과들은 식충식물이 발견돼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던 18~19세기 때와 유사한 활기를 식물학에 불어넣고 있다.
식물이 놀라운 감각 능력을 갖고 있고, 화학물질, 중력, 빛, 소리를 통해 정교하게 의사소통을 한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 수많은 식물이 페로몬을 발산해 이웃에게 곤충의 습격 사실을 경고하고, 곤충을 끌어들여 생식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식물 지능'은 여전히 학계의 논란거리지만, 의식과 지능을 인간이 가진 뇌-뉴런을 중심으로 파악하는 인간 혹은 뇌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저자는 식물이 수동적인 대상이 아니라 활력 넘치는 자율적 존재라고 강조한다.
"식물의 복잡하고 적극적인 감각 체계에 대한 발견들은 식물을 위엄 있는 존재로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식물을 '서비스 제공자'라는 수동적 역할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또한 경건한 의미에서 소위 생물학적 영감을 얻게 해주는 생태학 스승으로서의 새로운 지위도 얻게 되리라 예상한다."
김윤경 옮김. 504쪽. 2만8천원
abullapi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