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통신기술 초석을 닦은 여배우 '헤디 라머'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영어 단어 밤쉘(bombshell)은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가 '폭탄선언'이고 두 번째는 '섹시한 금발 미녀'라는 뜻이다.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로 불린 '헤디 라머'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엮은 다큐멘터리 영화 '밤쉘'은 단어가 지닌 중의적 의미를 포괄하는 제목이다.
헤디 라머는 1940년대 할리우드를 뒤흔든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라머라는 이름 앞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디즈니는 그의 얼굴을 모델로 백설공주 캐릭터를 만들었다.
'엑스타시'(1933)로 데뷔한 그는 '붐 타운'(1941), '삼손과 데릴라'(1949) 등 수많은 히트작을 남겼고, 백치미를 풍기는 화려한 외모의 여배우로 자리 잡았다.
영화 관계자와 관객들은 그의 화려한 외모에만 집중했지만, 정작 라머가 관심이 있었던 것은 '발명'이었다.
라머는 초기 할리우드의 배우 착취 시스템에 시달리며 주 6일의 강도 높은 촬영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발명에 몰두했다.
오스트리아 출신 이민자인 라머는 2차 세계대전 발발로 민간인이 탄 여객선조차 독일 잠수함 공격을 받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무선조종이 가능한 어뢰 개발에 착수한다.
라머는 무선으로 어뢰를 조종하려면 보안기술이 필수적이라는 판단에 따라 모함과 어뢰가 주파수를 바꿔가며 통신을 주고받는 개념을 창안하고 '주파수 도약'(frequency hopping)이라고 이름 붙였다.
주파수 도약은 오늘날 무선통신 산업 근간을 이루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현재 GPS, 와이파이, 블루투스, 휴대전화 통화 등에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2015년 구글은 헤디 라머 탄생 101주년을 맞이해 헌정 영상을 발표했다. 이 영상은 배우로서보다도 과학자 헤디 라머에게 초점을 맞춤으로서 '헤디 라머가 없었다면 구글도 없었다'(NO HEDY LAMARR, NO GOOGLE)는 메시지를 전했다.
헤디 라머는 1942년 '주파수 도약' 기술 특허를 취득하지만, 당시 적국이던 오스트리아 출신이라는 이유로 특허를 몰수당한다.
또 해군 역시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사용을 거부했다. 그 이면에는 '여배우의 발명 따위 믿을 수 없다'는 편견이 깔렸다.
라머는 여배우로 화려한 삶을 누렸지만, 자신이 진정 추구한 과학자의 삶은 부당한 편견이 덧씌워져 무시당하고 홀대당한 것이다.
'밤쉘'은 31일부터 8일간 서울 신촌 일대에서 열리는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아이콘: 그녀의 영향력' 섹션에 공식 초청됐다. 공식 개봉일은 6월 7일이며 15세 이상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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