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세 할머니와 1천㎞ 달려온 트룬겔리티, 프랑스오픈 2회전행

입력 2018-05-29 09:58
88세 할머니와 1천㎞ 달려온 트룬겔리티, 프랑스오픈 2회전행



(서울=연합뉴스) 김동찬 기자 = 마르코 트룬겔리티(190위·아르헨티나)가 프랑스오픈 테니스대회 '깜짝 스타'로 떠올랐다.

트룬겔리티는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남자단식 본선 1회전에서 버나드 토믹(206위·호주)을 3-1(6-4 5-7 6-4 6-4)로 꺾었다.

나란히 세계 랭킹 100위 밖인 둘의 대결은 9번 코트에서 열려 팬들의 관심을 받기 어려운 카드였다.

하지만 트룬겔리티가 이번 대회에 출전하게 된 사연이 워낙 특이했다.

트룬겔리티는 이번 대회 예선 결승에서 패해 본선 진출이 좌절된 상황이었다.

메이저 대회에서는 본선 진출 선수 가운데 기권이 웬만해서는 나오지 않기 때문에 그는 '러키 루저'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이동했다.

그런데 올해 프랑스오픈에서는 유독 많은 수의 기권자가 속출했다.

지난해에는 본선 기권자가 1명에 불과했으나 올해는 벌써 8명이나 나왔다.

마지막 8번째 기권자가 나오면서 그 자리를 메울 '러키 루저'가 필요했고 트룬겔리티에게까지 순서가 돌아왔다.

이것도 원래는 프라지네시 군네스와란(183위·인도)에게 우선권이 있었지만 군네스와란 역시 기권이 8명이나 나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챌린저 대회에 나가기로 한 덕에 트룬겔리티에게 기회가 왔다.

하지만 트룬겔리티도 메이저 대회 본선에 출전할 수 있게 됐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파리에서 1천㎞ 이상 떨어진 바르셀로나에 있었다.

그는 1회전 경기에서 이긴 뒤 인터뷰에서 "바르셀로나에서 출발한 것이 오후 1시 정도였는데 파리에 도착하니 밤 11시 50분이었다"고 소개했다.



트룬겔리티는 남동생과 어머니, 할머니 등과 함께 차를 타고 파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프랑스오픈에 나가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할머니는 샤워 중이었다"며 "'지금 바로 가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30분 안에 준비를 마치고 출발했다"고 즐거운 기분으로 회상했다.

바로 다음 날 오전 11시 경기에 출전하려면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그의 할머니 다프네는 88세 고령이지만 손자의 메이저 대회 본선 경기를 직접 보기 위해 10시간 이동도 마다치 않았다.

밤 11시에 파리에 도착한 트룬겔리티는 "5시간만 자고 일어나 곧바로 대회장으로 향했다"며 현지 시간으로 오전 11시 경기를 준비한 과정도 설명했다.

오전 7시 30분에 대회장에 도착해 대기 선수 명단에 사인한 뒤 몸을 풀며 경기 시작을 기다렸다는 것이다.

지친 기색도 없이 2시간 54분 접전을 승리로 장식한 트룬겔리티는 "아르헨티나에 살면 1천㎞ 운전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여유를 보였다.

그는 2회전에서 마르코 세치나토(72위·이탈리아)를 상대한다.

트룬겔리티는 2회전에 진출하며 상금 7만9천 유로(약 1억원)를 확보했다. '러키 루저' 자격이 돌아오지 않았다면 받지 못했을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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