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막히는 북미정상회담 수싸움…공은 다시 트럼프에게 갔다

입력 2018-05-25 09:39
수정 2018-05-25 10:08
숨 막히는 북미정상회담 수싸움…공은 다시 트럼프에게 갔다



최선희 美비난→트럼프 회담 취소→김계관 "회담하자"→다음은?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 북한과 미국이 정상회담을 놓고 수 싸움과 힘겨루기를 이어가는 가운데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가 예정됐고 한미정상회담의 결과가 나온 지난 23일 오전만 해도 한반도 정세에 대한 판단은 낙관론이 많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북미정상회담 개최 여부에 대해 "우리가 원하는 어떤 조건들이 있고 그러한 조건들이 충족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회담이 열리지 않겠지만, 솔직히 북한과 세계를 위한 위대한 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에 대해 "그가 틀림없이 매우 진지하다고 생각한다"는 평가도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될 것으로 확신한다며 회담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혀 낙관론에 힘을 보탰다.

같은 날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방북하려던 남측 취재단의 명단을 접수했다. 경색된 남북관계 속에서 지난 16일부터 수령을 거부해온 남측 기자단의 방북을 전격적으로 수용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남북 간 물밑접촉을 통해 긴밀한 협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이 비난한 맥스선더 한미연합 군사훈련의 종료일인 25일 이후 남북 고위급회담을 비롯한 대화 재개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을 하기도 했다.



북미관계 뿐 아니라 맥스선더 한미 연합공중훈련으로 경색된 남북관계까지 풀려나갈 것이라는 기대감도 줬다.

24일에는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첫걸음을 내딛는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행사가 이뤄지면서 국제사회의 이목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숲 속으로 쏠렸다.

북한은 한국과 미국 등 5개국 취재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날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 17분까지 핵실험장 2·3·4번 갱도와 막사, 단야장(금속을 불에 달구어 버리는 작업을 하는 자리), 관측소, 생활건물 본부 등을 연쇄 폭파하는 방식으로 핵실험장을 폐기했다.

그러나 이날 오전 핵실험장 폐기를 앞두고 북한에서 문제의 발언이 나왔다.

대미업무를 담당하는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담화를 통해 군사공격으로 카다피 정권이 제거되며 체제전환을 이룬 리비아 모델을 언급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방송인터뷰를 비난하며 "미국이 우리의 선의를 모독하고 계속 불법무도하게 나오는 경우 나는 조미(북미) 수뇌회담을 재고려할 데 대한 문제를 최고지도부에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펜스 부통령에 대해 "무지몽매하다"는 등의 평가를 하기도 했다.

지난 16일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도 담화를 통해 자신들의 일방적인 핵포기만 강요하는 대화에는 흥미가 없으며 내달 12일 북미정상회담에 응할지 재고려할 것이라고 밝힌 데 이어 8일만에 다시 정상회담 재검토 가능성을 경고한 것이었다.

미국과 북한이 물밑접촉을 이어가며 합의문을 조율하는 가운데 북한이 미국에 기싸움을 거는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미국이 요구하는 비핵화와 북한이 원하는 안보 우려 해소 사이에 간극이 있는 상황에서 정상회담 재검토라는 카드를 내밀며 미국의 양보를 요구한 것이라는 얘기다.

사실 이 기간 북한은 남북관계를 경색시키면서, 미국과의 정상회담 의제 논의에 일방적으로 불참하는 등 북미 갈등도 노정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YNAPHOTO path='PYH2018052501320034000_P2.jpg' id='PYH20180525013200340' title='김정은에게 보낸 트럼프의 공개서한' caption='(워싱턴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앞으로 보낸 공개 서한. '/>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를 낚아챘다. 북한의 태도를 거론하며 북미정상회담 취소라는 초강수를 던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김정은 위원장 앞으로 쓴 공개서한에서 "당신을 거기서 만나길 매우 고대했지만, 최근 당신들의 발언들에 나타난 극도의 분노와 공개적 적대감으로 인해 애석하게도 지금 시점에서 회담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느낀다"며 "그러므로 싱가포르 회담은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백악관 관계자는 이날 "펜스 부통령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인내의 한계'였으며 정상회담을 취소하게끔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서한에서 "이 가장 중요한 회담과 관련해 마음을 바꾸게 된다면 부디 주저 말고 내게 전화하거나 편지해달라"고 밝혀 대화의 문을 완전히 닫지는 않았음을 시사했다.

백악관 관계자도 "북한과의 평화에 대한 희망은 여전히 있지만 그렇게 하려면 북한은 수사(말)를 바꿀 필요가 있다"면서 "북한이 기꺼이 통과하고자 한다면 여전히 열려 있는 뒷문이 있지만, 그것은 최소한 그들의 수사 방식을 바꾸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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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북한에 대해 정상회담을 하고 싶으면 미국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바꾸고 성의 있는 모습을 보이라는 주문을 던진 셈이다. 이는 회담 내용상으로 비핵화 등과 관련해 더 많은 양보를 주문하는 요구로도 읽힌다.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서한으로 공이 북한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북한은 김계관 제1부상을 다시 내세워 담화를 발표하고 북미정상회담을 하자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시기 그 어느 대통령도 내리지 못한 용단을 내리고 수뇌상봉이라는 중대 사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데 대하여 의연 내심 높이 평가하여 왔다"며 "그런데 돌연 일방적으로 회담 취소를 발표한 것은 우리로서는 뜻밖의 일이며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는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음을 미국 측에 다시금 밝힌다"고도 했다.

이번 회담 취소의 명분이 된 최 부상의 담화에 대해서는 "미국측의 지나친 언행이 불러온 반발에 지나지 않는다"며 의미를 축소했다.

특히 이번 담화가 '위임에 따른 것'이라고 명시해 김정은 위원장이 뜻이 담겼음도 분명히 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북측이 이번 담화를 통해 대화 여지를 열어두고 있어서 단기적으로 형성된 북미간의 상호 불신을 걷어내면 만남이 재개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놨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북한이 대화 의지를 분명히 한 만큼 공은 다시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에게 넘어갔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jy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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