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러·중 활용 美견제외교 속에서도 잇단 유화책 신호
러· 中 방문…이란 핵합의 유지·자유무역 강조하면서도 美자극 피해
미국과의 전통적 우호관계·대화통한 해결 강조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독일이 이란 핵 합의와 고율관세 문제 등으로 고조되는 미국과의 갈등을 풀어내기 위해 전방위적인 외교전에 나섰다.
미국과 신경전을 넘어 전면적인 충돌이 벌어질 수 있는 국면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뿐만 아니라 장관들까지 총동원돼 타개책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상황이다.
특히 독일 정부는 최근 러시아와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강화해 미국을 견제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미국과의 충돌이 현실화될 경우 경제적 충격이 상당하기 때문에 최대한 협상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 18일(현지시간) 러시아 소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데 이어 24일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난다.
메르켈 총리는 이란 핵 합의 유지와 발트 해를 통한 러시아와 독일 간 천연가스관 연결사업인 '노르트 스트림2'의 지속적 추진 등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노르트 스트림2'는 미국이 반대해온 사업으로, 미국은 최근 독일과 긴장국면이 조성되자 이 사업이 대러 경제제재에 저촉될 수 있다며 압박했다.
메르켈 총리는 시 주석과의 회담에서도 이란 핵 합의를 유지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할 전망이다.
특히 중국 역시 유럽연합(EU)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고율관세 부과 문제로 갈등을 빚으며 협상을 벌이고 있다.
메르켈 총리와 시 주석이 자유무역을 강조하며 미국을 견제할 것으로 관측되는 대목이다.
총리 취임 후 11번째로 중국을 방문하는 메르켈 총리는 높아지는 미국의 무역장벽에 대한 타개책으로 중국 시장에 더욱 공을 들일 전망이다. 2016년부터 중국은 독일의 최대교역국으로 떠올랐다.
앞서 메르켈 총리는 17일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 참석했고, 10일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만났다.
메르켈 총리는 미국의 압박을 풀어내기 위해 이 같은 광폭 외교행보를 보이면서도 미국에 대한 비판의 강도는 조절했다.
메르켈 총리는 미국의 이란 핵 합의 탈퇴 자체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면서도 "해결 방법은 대화하는 것"이라며 대화에 방점을 찍었다.
EU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해 각각 25%, 10%의 고율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미국의 방침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비판은 자제해왔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 16일 연방하원 연설에서 "우리가 오늘날 발생한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유럽 간의) 대서양 양안 관계는 여전히 중요하다"면서 "이러한 대서양 양안 관계는 미국의 이란 핵 합의 철수와 같은 의견 차이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는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노르트 스트림2'가 가동되더라도 우크라이나 경유 가스 공급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르트 스트림2' 가동 시 우크라이나 경유 가스관의 폐쇄를 우려한 미국 측 입장을 감안한 발언이다.
더구나 독일 정부 측은 이란 핵 합의보다 미국과의 무역전쟁을 피하는 데 주안점을 두는 인상이다.
미국이 독일의 최대 수출국이라 점을 감안해 유화책을 선호하는 셈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과 회담을 하기위해 미국 워싱턴을 방문 중인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부 장관은 전날 "이떤 지점에서 의견이 다를지라도 미국과의 유대 관계는 가깝고 깊다"면서 "열린 대화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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