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앰네스티 "로힝야 반군이 힌두교도 99명 학살한 증거 있다"
로힝야 반군 가해 첫 주장…"여성·아동 납치 살해, 이슬람 개종 강요"
생존자 증언·법의학자 분석 사진 증거로 제시
(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지난해 8월 미얀마 경찰초소를 급습해 유혈분쟁과 난민사태를 촉발했던 로힝야족 반군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SA)이 힌두교도를 학살했다는 주장이 처음으로 제기됐다.
인권단체인 국제 앰네스티(AI)는 22일 자체 홈페이지에 게재한 '라카인주에서 벌어진 학살' 제하 보고서에서 로힝야 무장단체가 지난해 8월 서부 라카인주에서 99명의 힌두교도를 끔찍하게 살해한 증거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AI는 미얀마 라카인주와 난민이 머무는 방글라데시에서 수십 명을 면담한 결과와 법의학자가 분석한 사진 증거를 토대로 ARSA 대원들이 잔혹한 공격을 저질러 힌두교도를 비롯한 소수 종교집단에 공포를 조장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ARSA 대원들은 지난해 8월 25일 오전 라카인주 북부 마웅토의 힌두교도 집단 거주지인 아 나욱 카 마웅 세이크 마을에 들어가 약탈하고, 눈을 가리고 결박한 힌두교도 53명을 마을 외곽으로 데려가 처형하는 방식으로 살해했다.
또 ARSA는 이슬람으로 개종을 강요하면서 8명의 여성과 아이들을 납치했고, 생존한 여성과 아이들에게는 방글라데시행을 강제했다고 보고서는 덧붙였다.
그 밖에도 ARSA는 이튿날인 8월 26일 마웅토 외곽에서 2명의 여성과 아동 3명 등 6명을 죽이기도 했다고 국제 앰네스티는 기술했다.
ARSA는 핍박받는 동족을 위해 싸우겠다며 대(對) 미얀마 항전을 선포하고 2016년 10월과 지난해 8월 라카인주 국경지대의 경찰초소를 급습했다.
지난해 8월 두 번째 공격 이후 미얀마 정부와 군(軍)은 ARSA를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토벌 작전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수천 명이 죽고 70만 명에 이르는 로힝야족 난민이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대피했다. 21세기 아시아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의 난민사태다.
국경을 넘어온 난민들은 미얀마군이 민간인을 끔찍하게 학살하고 자신들을 국경 밖으로 내몰기 위해 성폭행과 방화, 고문을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유엔과 미국 등 국제사회는 이를 '인종청소'로 규정해 규탄하고 제재와 국제법정 기소 등을 추진 중이다.
이처럼 라카인주 유혈사태를 둘러싸고 그동안 제기된 인권 유린 주장에서는 미얀마군이 가해자, 로힝야족이 피해자였다. 미얀마 측이 로힝야 반군에 의한 집단학살 주장을 폈지만, 국제사회는 이를 신뢰하지 않았다.
국제 인권단체가 로힝야 반군에 의한 집단학살 주장과 증거를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주목된다.
AI의 티라나 하싼 위기대응국장은 "우리의 최근 조사 결과는 라카인주에서 벌어진 극도로 어두운 역사에서 ARSA가 자행한 숨겨진 인권 유린을 조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생존자들에게 지울 수 없는 악몽을 남긴 ARSA의 잔혹성을 무시할 수 없다. 인권을 유린한 ARSA 대원들의 행동은 미얀마군이 저지른 만행만큼 잔혹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ARSA의 끔찍한 만행은 미얀마군의 이른바 '인종청소' 작전 이후 본격화했다. 양측 모두 비판받아야 마땅하다"며 "양측의 만행은 유엔 조사단 등의 독립적인 조사를 통해서만 명백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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