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뮬로바 "얼음 여왕? 제겐 아픈 별명"

입력 2018-05-22 18:33
바이올리니스트 뮬로바 "얼음 여왕? 제겐 아픈 별명"

내달 '제네바 카메라타'와 내한…"연주 기쁨 뒤늦게 깨달아"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얼음 여왕이 녹았다.'

러시아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빅토리아 뮬로바(59)는 활동 초기 차갑고 기계적인 이미지와 무표정한 얼굴, 냉정한 음악 해석 등으로 '얼음 여왕'이란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보다 유연해진 레퍼토리와 연주 스타일로 관객과 만나며 과거와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얼음 여왕이 녹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

내달 내한 공연을 앞둔 뮬로바는 22일 연합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얼음 여왕'과 관련한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아왔지만, 이는 숫기 없는 모습을 오해한 것일 뿐"이라며 "제겐 아픈 별명"이란 답변을 내놓았다.

모스크바 음악학교와 모스크바 예술학교에서 공부한 뮬로바의 명성은 1980년대 러시아 음악학파의 결점 없는 테크닉과 깨끗한 사운드에서 시작됐다.

1980년 헬싱키에서 열린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데 이어 1982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며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이를 위해 그는 죽도록 연습에 매달렸는데, 한 음이라도 어긋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 자체의 기쁨을 늦게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옛날에는 연주하는 것을 안 좋아했을 정도였어요. 부모님이 억지로 바이올린을 손에 쥐여주셨기 때문에 연주를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아시다시피 자유를 찾아 러시아를 떠났고 점점 제가 원하는 것을 따라가고 있어요."

그의 말대로 그는 서방으로 목숨을 건 망명을 감행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 이듬해인 1983년 스웨덴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

옛 소련 정보기관인 국가보안위원회(KGB)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호텔 방에 분신과도 같은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을 그대로 둔 채 국경을 넘는 과정이 한 편의 첩보 영화처럼 전개됐다.

탈출 후 미국에 머물다 유럽으로 건너간 뮬로바는 거장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1933~2014)와 26년의 나이 차에도 불구, 연인 관계로 발전해 또 한 번 크게 화제가 됐다.

5년간 함께 산 이들 사이에서 아들 미샤 뮬로브-아바도가 태어났다. 뮬로바는 아바도와 헤어진 후에도 건강을 염려하고 부고에 가슴 아파하는 등 그에 대한 마음을 오래 간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삶을 산 그에게 자신의 음악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꼽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제 커리어에서 중요한 순간은 아주 많다"고 했다.

"시벨리우스 콩쿠르와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한 것, 러시아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을 만난 것을 빼놓을 수 없겠죠. 저를 음악가로 있게 한 클라우디오 아바도, 조반니 안토니니, 오타비오 단토네, 파보 예르비 등과의 만남도 중요한 순간으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

그는 이와 함께 현재 남편인 첼리스트 매슈 발리와의 만남과 작업을 "인생의 큰 순간"으로 꼽았다.

"남편은 제게 음악의 다양한 형태를 소개해 줬어요. 그는 클래식과 재즈, 인도음악, 전자음악 등 장벽을 허무는 음악을 사랑하죠. 그와 함께 저도 다양한 레퍼토리들을 탐험하며 음악가로서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특히 2000년대 들어 거트현(양의 창자를 꼬아 만든 현)을 사용하는 바이올린을 들고 바로크 음악에 뛰어들며 연주 스타일에 큰 변화를 보였다.

뮬로바의 바흐 연주에 대해 영국 일간 가디언은 "뮬로바의 바흐를 듣는다는 것은 살면서 가장 멋진 일 중 하나"라는 극찬을 내놓기도 했다.

그의 호기심은 바로크 음악부터 현대음악, 퓨전과 실험음악에까지 이를 만큼 폭넓다.

그는 오는 6월 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내한 공연에서 오랜만에 한국 관객과 만난다.

클래식뿐 아니라 재즈, 록, 연극, 영상 등 다방면에 관심을 지닌 연주 단체 '제네바 카메라타'(지휘 데이비드 그렐자메르)와 함께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다.

그는 협연 곡에 대해 "아주 아름답고 우아한 곡"이라고 설명했다. "음악에 있어 테크닉이 유일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때로는 느린 악장의 표현도 중요하죠. 이 곡처럼요."

4만~15만원. ☎1577-5266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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