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조상이 S.E.S? 앞선 70년간 300여팀 활동했죠"

입력 2018-05-19 12:32
"걸그룹 조상이 S.E.S? 앞선 70년간 300여팀 활동했죠"

음악평론가 최규성 '걸그룹의 조상들' 책 내고 전시회

"1960년대가 걸그룹 전성시대…봉숭아자매 발견 때 짜릿"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친구들아~ 이게 우리 첫 독집 앨범이었어. 이쪽이 나고, 이쪽은 우리 친언니(김천숙)…."

1960년대 걸그룹 이시스터즈 2기 멤버인 김희선(78·활동 때 이름은 김명자였으나 1991년 개명)이 여고 동창생들에게 팀의 첫 독집 앨범 '워싱턴 광장' LP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색동회 이사이자 동화구연가인 김희선은 여전히 꾀꼬리같이 맑은 음성이었다.

김희선은 최근 친구들과 함께 서울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갤러리에서 열리는 '걸그룹의 조상들' 전시회를 찾아 한쪽에 마련된 이시스터즈 코너에서 자신도 갖고 있지 않은 사진에 눈을 떼지 못하며 옛 추억에 잠겼다.

그는 베트남 공연 때 사온 프랑스산 원단으로 해입었던 반짝이 미니 원피스 의상이 전시돼 있자 "지금 못지않게 화려했다"며 미소 지었다. 이시스터즈는 이 의상을 입고 1969년 서울시민회관에서 열린 신성일·윤정희의 극장쇼 게스트로 올랐다.



때마침 또 한 명의 반가운 얼굴도 이곳을 찾았다. 인천 출신 여성들로 1968년 결성된 5인조 걸밴드 레이디버즈의 드러머 김삼순(70)이었다. 김삼순은 드럼 스틱을 잡고 찍은 커트 머리의 흑백 사진 앞에서 "미 8군에서 공연할 때인데, 미군들이 유혹할까 봐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남장을 했다"는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김삼순은 "집안에서 형부가 전국 1위 드러머였고 외손자가 드럼으로 동아방송대에 수석으로 입학했다"며 "나도 팀 활동을 마친 뒤 18년간 오케스트라와 실버 악단에서 활동했다"고 말했다.



'걸그룹의 조상들' 전시회는 음악평론가 최규성 씨가 1930년대부터 2000년대 이전까지 등장한 걸그룹의 역사를 정리한 책 '걸그룹의 조상들' 출간을 기념해 마련됐다.

2006년까지 20년간 일간지 기자로 일하다 음악평론가로 전향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수집한 방대한 자료(앨범, 잡지, 사진, 광고 등)와 텍스트를 정리하고 고증을 거쳐 70년에 걸쳐 활동한 걸그룹 305팀을 찾아내 정리했다. 책의 부제는 '대중이 욕망하는 것들에 관한 흥미로운 보고서'다.

전시회에서 만난 최 평론가는 걸그룹에 주목한 데 대해 "시대를 막론하고 대중에게는 걸그룹에 대한 로망이 있다"며 "사람에게는 더 멋있어지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 시대마다 대중이 추구하는 트렌드와 패션 등이 걸그룹에 투영돼 있다. 당대 가장 멋지고 세련된 여성들이었고, 그중 앨범을 많이 낸 김시스터즈, 이시스터즈, 바니걸스 등은 음악성까지 갖췄다"고 소개했다.



책에는 한국 최초의 걸그룹인 1935년 저고리시스터즈를 시작으로 1940년대 암흑기의 걸그룹부터 1990년대 신세대 문화의 등장과 함께 탄생한 요정 걸그룹까지 시대별 특징이 잘 정리돼 있다. 한류와 한국 대중음악의 맹주로 떠오른 2000년대 걸그룹은 마지막에 짧게 언급했다.

최 평론가는 앨범을 내고 공식적으로 활동한 걸그룹이 처음으로 등장한 시기를 1950년대로 꼽았다. '목포의 눈물'로 유명한 이난영이 1953년 딸과 조카로 구성한 걸그룹 김시스터즈(숙자, 애자, 민자)로, 동서양 악기를 만능으로 다룬 이들은 미국에 진출해 큰 인기를 끈 '원조 한류 스타'였다.

1960년대에는 이시스터즈뿐 아니라 김치캣, 영씨스터, 블루 리본, 은방울자매, 비둘기자매, 허니 김스, 김치 시스터즈, 갑순을순 등 수많은 걸그룹이 활동한 전성시대였다. 그중 1962년 은방울자매의 성공은 트로트 계열 걸그룹을 양산했고, 1968년 등장한 펄시스터즈는 정적인 오디오 시대에서 화려한 비주얼 시대로 전환되는 체질 개선을 불러왔다고 한다.

최 평론가는 "이 시기에는 미 8군 무대의 활성화가 걸그룹의 개체 수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며 "1960년대 걸그룹은 미 8군 무대에서는 서양식 노출 의상을 입고 팝송을, 일반 무대에서는 단아한 한복을 입고 트로트나 민요를 불렀다"고 설명했다.



1970년대에는 TV가 일반 가정에 보급되며 영상 시대에 촉망받는 다양한 스타일의 팀들이 등장했고, 그중 바니걸스(고정숙, 고재숙)와 릴리시스터즈(백합자매로도 불림. 김성아, 김경아), 유리시스터즈(강혜원, 강인원) 등의 성공으로 쌍둥이 자매가 트렌드가 됐다.

최 평론가는 "지금도 '시스터즈'라고 하면 쌍둥이 자매를 연상하는 것은 그들의 대단했던 인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전시된 릴리시스터즈의 앨범 재킷 속 김성아를 가리키며 "(젝스키스) 은지원 씨의 엄마"라고 알려줬다.

1980년대 걸그룹 침체기를 거쳐 1990년대에는 신세대 문화의 등장과 함께 기획사의 트레이닝을 받은 요정 걸그룹이 탄생했다. 우리에게 1세대 아이돌 그룹이라고 불리는 S.E.S와 핑클 등이다.

최 평론가는 걸그룹에 대한 관심만큼 오해도 크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친구들은 S.E.S와 핑클을 '걸그룹의 조상'이라고 부르지만 이들 이전에는 장구한 걸그룹의 역사와 뿌리가 있었다"며 "걸그룹을 현대의 산물로 보고 그들의 존재를 무시하기에는 개체 수와 역사가 만만치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최초의 9인조 걸그룹이라고 부르는 소녀시대에 앞서 해방 이후 9인조가 넘는 걸그룹과 걸밴드들이 있었으며, 윤복희가 활동한 코리안키튼즈 등 1960년대 걸그룹들은 홍콩, 태국, 싱가포르, 미국, 캐나다, 유럽까지 일찍이 해외에 진출했다고 소개했다.



책을 집필하며 짜릿했던 순간으로는 봉숭아자매의 존재를 확인했을 때다.

"부평 고물상에서 나온 LP를 파는 곳에서 앨범을 찾아냈어요. 멤버가 확인은 안 되는데, 작곡가 최녹영 씨가 작곡한 노래를 너무 잘 불러 놀랐죠. 트로트 계열로는 은방울자매가 절대적이어서 그 영향으로 나온 듀오로 추정해요. 실제 은방울자매처럼 화음 없이 두 명이 함께 같은 음으로 노래하는 '유니송'을 구사했죠."

아쉬운 점으로는 사진은 있지만 이름이 확인 안 되는 등 고증에 어려움을 겪은 팀들을 책에 싣지 못한 점이다.

그는 "2012년에 같은 전시를 한번 했을 때 두 달간 준비해 2000년대 이전 걸그룹을 150팀 찾았는데, 이후 6년간 연구해서 배 이상을 발굴했다"며 "앞으로도 꾸준히 추적하는 작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소장한 자료를 모두 전시하지 못한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은방울자매의 앨범은 80여 장을 소장했지만 그중 5장밖에 전시하지 못했다고 한다.

"은방울자매가 가장 오래 활동해 앨범을 가장 많이 냈어요. 그다음이 바니걸스, 이시스터즈, 펄시스터즈 등이죠. 앨범 숫자를 보면 당대 음반 산업에서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어요."

2015년 경주에서 개관한 한국대중음악박물관에도 자료 제공을 한 그는 앞으로 대중음악영상자료원을 설립하는 게 꿈이라고 밝혔다.

'걸그룹의 조상들' 전시회는 27일까지다.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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