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베트남 개혁·개방 '도이머이' 도입전 시범단계와 유사"

입력 2018-05-18 10:10
"북한, 베트남 개혁·개방 '도이머이' 도입전 시범단계와 유사"

평양서 10년 근무한 베트남 대사 "북한식 개혁·개방 모델 찾아야"

(하노이=연합뉴스) 민영규 특파원 = 북한의 현재 상황은 베트남이 1986년 '도이머이'(개혁·개방) 정책을 도입하기 전 5년가량 경험한 시범단계와 비슷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도이머이는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이 법치국가 건설, 민주주의 실현을 표방하면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인정하고 해외투자를 유치, 경제성장의 물꼬를 튼 정책이다.



팜 띠엔 번 베트남 종신 대사는 18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집권한 2012년 이후 많은 변화가 보인다"면서 "공장과 농촌에 책임관리제와 도급제(포전담당제)를 도입해 주민이 할당량 외 잉여분을 가질 수 있도록 점점 제도화하는 등 베트남의 도이머이 시범단계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번 대사는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주평양 대사를 지내는 등 북한대사관에서 10년간 근무한 북한통이다.

그는 "북한은 중국과 베트남 개방 이후 경제개혁에 많은 관심을 두고 공부해왔고, 특히 1989년 구소련이 붕괴하면서 개혁·개방에 대한 연구를 더 적극적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신의주 특구, 나진·선봉 특구, 금강산 특구, 개성공단을 만들고 재일교포 자본으로 수백 개 공장을 유치했지만, 국내외 여건이 성숙하지 않아 성공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방북했다는 번 대사는 "현재 평양 상점에서는 공장과 농촌의 잉여 생산물이 유통되고 있고 외화도 마음대로 쓰는 것을 봤다"고 전했다.

그는 또 "돈 있는 사람들이 수입품을 사고 고급식당과 커피숍 등을 이용할 수 있으며 평양에만 택시회사가 10곳이나 있다"면서 "도이머이 시범단계와 다르지 않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베트남의 도이머이 시범단계는 농업 분야에서 지방 관료들이 먼저 도급제를 시행하고 나중에 중앙 지도자들이 그 성과를 인정하는 형식으로 진행됐지만, 북한은 지도자의 결정에 따른 것이라는 차별성이 있다고 번 대사는 지적했다.

그는 "베트남이 1989년 캄보디아에서 철수해 미국 등에 의한 경제봉쇄를 풀었던 것처럼 북한도 핵 문제를 해결해야 국제사회와의 경제협력과 개방 정책을 순조롭게 추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번 대사는 또 "북한은 중국이나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체제유지를 무엇보다 중시하기 때문에 북한의 체제가 보장된다면 개혁·개방의 결정적인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번 대사는 "북한은 시범단계를 거쳤고 개혁·개방해야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느끼고 있어 김 위원장이 '판문점 선언'에서 핵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힌 것처럼 결단성 있게 하면 본격적인 개혁·개방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최근 북한 선전 매체에서 김 위원장이 "노동당에 잘못이 있으면 과감하게 인정하고 제때 시정해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하고 있는 것도 놀라운 변화라고 번 대사는 설명했다.

다만 베트남이 도이머이를 도입할 때 '개혁이냐, 죽음이냐'라는 슬로건이 나왔던 것처럼 북한도 비상한 각오를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북한은 중국과 베트남의 개혁·개방 경험을 참조하고 배워야 하지만 내부 사정이 달라서 자기 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youngky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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