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행세한 학생에 속아 담배 판 점주 영업정지…법원 구제판결
'30대 외모' 학생, 계획적으로 경찰 신고…법원, 영업정지 취소 판결 확정
(서울=연합뉴스) 방현덕 기자 = "말보로 레드 한 갑 주세요."
안개비가 내리던 2015년 11월 어느 토요일. 인천시 남동구의 한 조그만 편의점에 몸집이 큰 남성이 들어섰다. 그는 익숙한 듯 4천500원짜리 담배 한 갑을 결제했다. 30대로 보이는 얼굴에, 점주 장모씨는 신분증 검사 없이 담배를 건넸다.
남성이 영수증을 챙겨 떠난 지 3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경찰이 편의점에 들이닥쳤다. 청소년에게 담배를 팔았다는 이유였다. 어안이 벙벙한 장씨에게 경찰은 "조금 전 신고가 들어왔다"고 했다. 담배를 사 간 남성이 실은 고등학생이었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에서 드러난 자초지종은 이랬다. 장씨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던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돈 문제로 장씨와 다투다 그만뒀다. 이 아르바이트생은 키 190㎝ 몸무게 105㎏의 친구에게 이를 말했고, 친구는 장씨를 골려주겠다며 담배를 사고 경찰에 스스로 신고한 것이다.
구청은 영업정지 1개월 처분을 내렸지만 장씨는 억울함에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장씨의 눈에는 담배를 산 학생이 말 그대로 '아저씨' 같았다. 폐쇄회로(CC)TV를 굳이 다시 돌려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나이가 들어 보였다고 장씨는 하소연했다.
게다가 장씨는 두 달 전 편의점을 시작하며 수 천만원의 빚을 졌다. 남편과 사별한 뒤 홀로 두 자녀를 키우던 그는 생계를 지키기 위해 법률구조공단의 도움으로 불복 소송에 나섰다.
장씨는 법정에서 "담배를 산 학생은 외관상 성인의 외모였다"고 주장했다. 성인인지 확인할 의무를 소홀했다고 탓할 수 없을 정도의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구청 측은 영업정지 처분이 정당하다고 반박했다. 사정이 어떻든 청소년에게 담배를 판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고법 행정2부(양현주 부장판사)는 1심과 같이 장씨의 편의점에 대한 남동구청의 1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담배를 산 학생의 외모가 성인처럼 보이는 데다 계획적으로 성인 행세를 해 청소년임을 알기는 어려웠다고 판단했다. 학생을 불러 직접 조사한 검찰이 '학생의 외모가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점이 인정된다'며 장씨의 청소년 보호법 위반 혐의를 기소유예한 점도 참작했다.
남동구청이 상고를 포기하며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하지만 장씨는 사건 이후에도 다른 청소년들의 유사한 신고에 시달리다 결국 편의점을 닫았다. 아르바이트생과 거구의 친구는 별다른 처벌 조항이 없어 법적 제재를 피해갔다.
장씨를 대리한 법률구조공단 박재천 법무관은 "청소년의 일탈행위로 영세 사업자가 의도치 않은 법 위반을 저지르는 사례가 종종 있다"며 "사업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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