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상가상' 베네수엘라…해외 채권자에 석유자산 압류당해

입력 2018-05-17 10:45
'설상가상' 베네수엘라…해외 채권자에 석유자산 압류당해

(서울=연합뉴스) 문정식 기자 = 극도의 경제난에 시달리는 베네수엘라가 최대의 외화 소득원인 석유 자산을 압류당해 설상가상의 처지에 빠졌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의 석유회사인 코노코필립스가 지난 2007년 베네수엘라의 좌파 정권이 몰수한 자산을 보상받기 위해 최대 26억 달러에 상당하는 석유를 압류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코노코는 최근 카리브 해의 네덜란드령 섬들에 저장된 베네수엘라산 석유를 압류할 수 있는 일련의 법원 판결을 얻어냈다. 지난달 파리에 있는 국제상의(ICC)의 중재 재판에서 이긴 데 힘입은 것이다.

네덜란드령 쿠라사오의 법원은 지난 4일 네덜란드에 등록된 코노코의 자회사가 현지에 저장된 6억3천600만 달러의 상당의 석유 제품을 압류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코노코는 이를 근거로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 PdVSA가 쿠라사오 정부로부터 임차한 이슬라 정유공장에 저장된 석유를 압류하는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이와는 별도로 보네르섬의 법원도 코노코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섬은 PdVSA가 이용하는 1천만 배럴의 석유 저장기지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코노코가 15억 달러 상당의 자산과 이자 4억4천90만 달러를 회수할 수 있도록 보네르섬은 물론 세인트마틴섬, 아루바섬에 있는 PdVSA의 자산을 압류할 수 있다는 판결이었다.

정통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PdVSA는 연쇄적인 압류 명령이 내려지자 10여척의 유조선을 베네수엘라 영해로 이동시켰고 쿠라사오섬의 이슬라 정유공장도 가동을 멈춘 것으로 알려졌다.

BMI리서치에 따르면 베네수엘라가 해외에 수출하는 석유의 약 16%는 이슬라 정유공장과 저장소, 아루바 섬의 항만 시설을 거치고 있다.

베네수엘라 국내의 정유시설들은 하루 130만 배럴의 처리할 수 있지만 노후화로 인해 현재는 처리량이 4분의 1 이하로 떨어졌다는 것이 현지 정유업계 노조의 주장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지난 14일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이 나라의 산유량은 지난달 수십 년만의 최저 수준인 하루 140만 배럴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국제유가가 3년여 만에 최고 수준으로 급등했어도 베네수엘라가 유가 상승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베네수엘라의 이코노미스트들은 석유 수출 소득도 실제로는 현저히 줄어든 상태라고 지적하고 있다.

하루 50만 배럴의 석유에서 제대로 소득이 발생하고 있을 뿐이고 30만 배럴은 차관을 빌려준 중국의 몫이며 나머지는 국내에서 사실상 무상으로 소비되거나 동맹인 쿠바에 낮은 가격으로 제공된다는 것이다.

코노코에 앞서 2개의 외국 광업 회사들이 국제 중재 재판에서 이겨 26억 달러를 보상받기 위한 강제 집행 절차를 밟을 수 있게 됐다.

한편 최소 25억 달러의 부도 채권을 보유한 해외 투자자들도 베네수엘라 자산의 압류를 노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의 자산 압류는 가뜩이나 외화 부족에 시달리는 데다 국제적 고립도 갈수록 심화되는 베네수엘라에 상당한 타격을 가할 전망이다.

BMI 리서치의 마라 로버트 뒤크 애널리스트는 "시기적으로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고 지적하면서 네덜란드령 섬들을 이용하는 수출이 이뤄질 수 없다면 베네수엘라 정부에 피해가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에너지 전문가인 미국 라이스 대학의 프란시스코 모날디 교수도 베네수엘라 국내에는 아시아행 대형 유조선들을 채울 수 있는 단 1개의 석유 수출 터미널이 있을 뿐이라고 말하고 코노코의 압류 조치는 "매우 큰 타격"이라고 논평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오는 20일 대선에서 권좌를 유지할 수는 있겠지만 해외 채권자들의 위협은 그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jsm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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