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태양을 닮은 비발디 음악의 화창함
파비오 비온디 & 에우로파 갈란테 내한공연 리뷰
(서울=연합뉴스) 최은규 객원기자 = 화창한 울림, 놀라운 기교, 화려한 음색. 마치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찬란한 햇빛이 공연장을 비추듯 눈부셨다. 300여 년 전 비발디가 환생한 듯 현란한 바이올린 연주를 들려준 파비오 비온디와 청중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고 간 메조소프라노 비비카 주노의 뛰어난 노래는 베네치아 바로크 음악이 어떤 것인지를 일깨운 무대였다.
음악회가 진행될수록 강도를 더해가는 놀라운 기교와 화창한 음색에 청중의 눈과 귀는 점차 무대로 빠져들었고 한 곡이 끝날 때마다 터져 나오는 환호와 박수갈채 덕분에 음악회 분위기는 더욱 고조했다.
지난 15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선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는 국내 음악애호가들에겐 비발디의 '사계' 음반으로 기억되는 고(古)악기 연주 단체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클래식 음악으로 통하는 '사계'는 휴대폰 벨 소리로 애용될 정도로 널리 알려졌으며 명반도 많다.
한동안 이탈리아 음악 단체인 '이 무지치' 음반이 '사계' 연주의 정석으로 꼽혔으나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가 연주한 '사계' 음반이 발매되자 이 음반은 즉시 돌풍을 일으키며 비발디 '사계' 연주의 새로운 모범으로 자리 잡았다.
이번 내한공연에서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는 비록 '사계'를 연주하지는 않았지만 '화성에의 영감'이란 부제로 잘 알려진 바이올린 협주곡 작품3의 제8번을 비롯한 여러 바이올린 협주곡을 흥미진진하게 연주해내며 비발디 협주곡이 담은 대조의 미학과 다채로운 표정을 살려냈다.
에우로파 갈란테는 바로크 시대 음악작품을 그 시대에 사용한 악기와 연주방식으로 선보이는 고악기 연주 단체이긴 하지만 그 연주법은 다른 고악기 단체들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 대개 거트현(동물 창자로 만든 줄)을 건 현악기를 연주하는 고악기 연주자들은 활을 현에 밀착하기보다는 현을 자연스럽게 공명하는 부드러운 활 쓰기를 통해 자연스러운 음색을 추구하는 편이지만,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는 마치 개량한 현대 악기를 연주하듯 강력하고 차진 음색을 추구했다. 활대 윗부분을 쥐고 활털 윗면을 많이 활용하며 활을 현에 강하게 밀착하는 연주법 덕분에 그들이 만들어낸 소리는 더 강력하고 전달력이 뛰어났다.
공연 초반에는 연주자들이 콘서트홀 음향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탓인지 에우로파 갈란테 특유의 강력하고 화려한 음색은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으나, 휴식 후 여러 오페라 서곡과 비발디의 두 대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할 때는 음 하나하나 미묘한 뉘앙스가 객석에 전달되며 청중의 열광적인 환호를 끌어냈다.
무엇보다 이번 무대에서 가장 돋보인 이는 에우로파 갈란테와 협연한 메조소프라노 비비카 주노였다. 당초 이번 내한공연에선 메조소프라노 비비카 주노와 더불어 마티나 벨리도 함께 출연해 비발디의 '글로리아'와 '이메네오'의 몇 곡을 노래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마티나 벨리가 건강상 문제로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되자 비비카 주노는 프로그램을 변경해 이번 공연 2부를 이끌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이번 공연을 더욱 열띤 무대로 만들었다.
비발디 오페라 '오티카의 카토네' 중 '성난 바다처럼'을 비롯해 비비카 주노가 선보인 아리아들은 비발디 오페라의 화려함을 잘 전해주는 기교적인 곡들로서 평범한 성악가라면 섣불리 한 무대에서 선보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노는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화려한 외모와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매너로 청중에게 강한 인상을 전했을 뿐 아니라 풍부한 음색과 안정된 기교, 놀라운 표현력을 발휘해 이 어려운 아리아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소화해내며 경탄을 자아냈다.
특히 그녀가 비발디의 '그리젤다' 중 '두 줄기 바람이 몰아치고'에서 선보인 뛰어난 가창과 화려한 기교는 압도적이었다. 이번 무대는 비발디가 '사계'를 탄생시킨 훌륭한 기악곡 작곡가였을 뿐 아니라 얼마나 훌륭한 오페라 작곡가였는지, 그의 성악곡들이 얼마나 다채롭고 아름다운지를 일깨워준 특별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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