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턴의 '리비아 모델' 강조에도 트럼프, 폼페이오는 무언급
예민반응하던 북한도 못 들은 척…트럼프의 "새로운 대안"만 높이 평가
전문가들 "북한에 리비아 모델 적용 어렵다"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북핵 해법으로 '리비아 모델'을 트럭에 싣고 동네방네 팔고 다니고 있으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북미 정상회담 정지 작업을 위해 이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2차례 직접 만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리비아 모델'이라는 표현을 입에 올리지 않고 있다.
'리비아 모델'을 살 마음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 사놓고 시치미를 떼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북한 매체들은 폼페이오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구두 전갈과 함께 전한 "새로운 대안"에 대해선 김 위원장이 높이 평가하고 사의를 표했다고 전했지만, 볼턴의 '리비아 모델'에 대해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은 '리비아 모델'에 대해, 핵 프로그램을 포기했다가 정권이 지도자인 무아마르 카다피의 피살과 함께 교체된 모델로 보고 자신들이 리비아의 선례를 따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해온 만큼 예민한 반응을 보일 법도 한데 못 들은 체 하고 있다.
북한이 '새로운 대안'을 높이 평가한 것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대안'과 볼턴의 '리비아 모델'이 일치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리비아 모델'에 대한 북한의 침묵은 트럼프 대통령의 육성 전달자로 폼페이오만 상대하고, 볼턴과 시비로 인해 북미 정상회담 도정에 불필요한 잡음을 만들지 않겠다는 뜻일 수 있다.
볼턴의 '리비아 모델' 판촉에 대해, 15년 전 리비아 사찰에 참여했던 사찰관을 포함해 많은 전문가들은 크게 2가지 점에서 북한에 적용하기 어렵다고 본다.
우선 '리비아 모델'에 대한 북한의 거부감이다. 지난 2005년 북한을 방문, 리비아 모델을 따를 것을 권유했던 톰 란토스(2008년 사망) 미국 하원의원의 비서관을 지낸 로버트 킹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은 지난달 연구소 웹사이트 기고문에서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에서 진전을 이루려면 리비아를 언급하는 것은 피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킹 고문은 2011년 북한이 미국에 요청한 인도적 지원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대북 인권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계관 당시 외무성 제1부상과 대화를 소개했다. 김계관은 카다피 정권이 붕괴 직전이던 리비아 사태를 가리키며 "란토스 의원이 우리에게 리비아 예를 따르라고 권했지만, 아니, 우리는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며 강조했다는 것이다.
볼턴이 평소 북한 같은 나라들과는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법의 가능성을 부인하고 정권교체나 군사적 타격에 의한 해결을 선호해온 사실을 차치하고, 국가안보보좌관으로서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한꺼번에 들어내는 기술적 측면에서만 '리비아 모델'을 거론한다고 하더라도, 북한에 적용할 수 있는 '리비아 모델'의 실체가 없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상당수다.
오바마 행정부 때 국무부 비확산군축 특별보좌관을 지낸 로버트 아인혼은 지난달 29일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리비아는 사실 핵 프로그램이랄 것도 없었다. 사용할 줄도 모르는 원심분리기 부품을 상자들에 보관하고 있었고 이것들을 미군 수송기가 싣고 떠나는 것으로 리비아의 '핵 프로그램' 전부를 들어낸 셈"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북한은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핵무기가 모두 몇 개인지, 핵시설이 모두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것들을 모두 검증하고 해체하는 데는 수년이 걸린다는 것이다.
지난 2004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고위사찰관으로서 리비아에 파견됐었던 로버트 켈리는 지난달 30일 '더 네이션'과 인터뷰에서 볼턴의 '리비아 모델' 언급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켈리 역시 리비아 전국의 핵시설 의심 장소를 사찰했음에도 카다피가 실제로 진지하게 핵무기를 손에 넣으려 시도한 흔적을 거의 발견하지 못했다며 핵 시험을 최소 6차례 한 북한에 적용할 만한 연관성이 없다고 말했다.
"리비아가 파키스탄으로부터 입수한 설계도를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은 채 금고에 넣어두고 있었던 것마저 없었더라면 사찰에서 발견할 게 전무했을 정도였다"고 그는 덧붙였다.
켈리에 따르면, 특히 볼턴은 당시 미국 사찰팀 외에 유엔 산하의 IAEA 같은 국제기구가 리비아 핵 사찰에 참여하는 것에 맹렬하게 반대했으며, 조지 부시 대통령이 카다피와 협상하는 것에도 끈질기에 반대하는 바람에 결국은 배제되기도 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리비아 핵 협상 때는 리비아가 핵 프로그램과 테러리즘 지원의 포기에 동의하는 대가로 서방 정부와 기업들이 리비아와 경제관계를 맺기 시작한 점을 들어, 볼턴이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제거하기까지는 북한에 아무 것도 줄 수 없다고 말하는 것과도 다르다고 지적한다.
y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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