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막눈 뜬 엄마들의 꽃시 아름답네

입력 2018-05-15 06:03
까막눈 뜬 엄마들의 꽃시 아름답네

김용택 시인이 엮고 글 보태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글을 처음 배워 밝은 세상을 만나게 된 어르신들이 설레는 마음을 시로 썼다. 지난날을 돌아보고 누군가를 생각하며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쓴 시들은 그야말로 시의 참된 가치를 일깨워준다.

시집 '엄마의 꽃시'(마음서재)는 2012∼2017년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주관한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수상한 작품들 가운데 100편을 선정해 엮었다. 김용택 시인이 시를 고르고 시를 읽은 감상을 글로 보탰다.

이 시들은 대부분 고령의 할머니들이 평생 처음으로 글을 배워 쓴 것이다. 어려운 시대에 여자라는 이유로 교육에서 완전히 배제된 이들이 평생 한을 품고 살다 뒤늦게 글을 깨치고 환한 새 세상을 만난 기쁨이 오죽할까. 맞춤법이 조금씩 틀려도 분명히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시들이다.

"학교는 아들만 다니는 거라고/그때는 그게 좋았지/동생은 학교 가구 난 집에서 놀아쓰니까//언잰가 동생이 책을 보며 공부를 하네/까만 글씨 먼지 몰라도/하나씩 읽고 있으니 엄마는 동생 보며 웃네/나는 엄마 보며 웃는대 엄마는 동생만 보네//모두 잠든 밤/동생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조심조심/까만 글씨만 보인다/에이! 아무것도 모르겠네//나는 이재 경노당 학교에 감니다/그때 책에 있던 글씨가 'ㄱ'이라는 걸 학교에서 배운다/나도 이제 책 읽을 수 있는대/책 읽는 내 모습 보고/우리 엄마가/하늘에서 날 보며 웃고 게시겠지?" ('엄마의 웃음' 고예순)

이들의 시에는 비단 글을 알게 된 기쁨만이 아니라, 처음으로 학교를 다니고 이름을 쓰고 자신의 오롯한 정체성을 인정받았다는 감격이 어려있다. 85세 안춘만 할머니는 그 감격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이름이 여러 개다/어릴 때는 순둥이/시집와서는 군산댁, 기범, 기숙이 엄마/율이댁 며느리, 경우 할머니/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은/아무도 부르지도 안 했다/그러나 지금 85세 문해학교 다니니까/선생님이 이름을 부를 때면/안춘만이라고 불러준다/몇십 년 만에 들어본 나의 이름/내 이름은 안춘만이다/멋지다…" ('내 이름 찾기')

이 시에 김용택 시인은 이렇게 덧붙였다. "여든다섯 살/안/춘/만!/만세!"

지적장애로 인해 뒤늦게 글을 배운 조미정 씨의 사연도 감동적이다.

"나는 지적 장애를 가진 45살 아이 엄마이다/평생 무시와 간난과 불편함 속에 살았다/21살에 엄마를 잃고 우울증이 심해 죽음을 생각했다/그러나 33살 식각장애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결혼 후 3년 만에 하나밖에 없는 윤정이가 태어났다/이때가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부부가 장애다 보니 우리 아이도 지적 장애로 태어났지만 그래도 괜찮다/그러다 작년 겨울에 인실이를 통해 한글교실에 왔다/내 아이 윤정이를 가르쳐주기 위해 왔는데 이제는/내가 너무나 행복하게 수업을 받고 있다 배울 수 있고/행복을 갖다 준 희망학교에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희망학교')

김용택 시인은 "이 시집을 읽어가며 저는 내내 제가 사는 것이, 제가 글을 쓰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너무 한갓진 글을 쓰고 있구나, 너무 같잖은 소리를 하고 있구나, 너무 쉽게 글을 쓰고 있구나, 살려면 멀었다, 글을 쓰려면 멀었다는 생각들로 잠을 못이루고 뒤척이곤 했습니다. 글을 쓴답시고, 시를 쓴답시고, 제가 얼마나 시건방을 떨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시대의 선생님들입니다"라고 했다.

264쪽. 1만3천500원.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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