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조작' 드루킹 수사 곧 4개월…양대 의혹 규명은 아직
드루킹 일당 '대선 전 댓글조작'·김경수 연루 여부 계속 수사 중
경찰 "모두 확보하면서 끝까지 파헤칠 것"…일각 '늑장수사' 지적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네이버 댓글 여론조작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지난 1월 19일 첫 수사의뢰 이후 곧 4개월을 맞는다.
'초반 부실수사', '언론대응 미숙' 등 여러 비판을 받은 경찰은 뒤늦게나마 관련 증거를 하나 둘 확보하며 사건 실체 규명에 힘을 쏟고 있다.
다만 '19대 대선 전 댓글조작 여부'와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 연루 여부'라는 양대 의혹에 대해 경찰은 아직 속 시원한 답을 내지 못한 상황이다.
◇ 조금씩 드러난 '댓글조작' 실체…대선 전 댓글조작 여부 규명 초점
핵심 의혹 중 하나는 '드루킹' 김모(49, 구속기소)씨 일당이 작년 대선 전부터 매크로(동일작업 반복 프로그램)를 이용한 댓글 순위조작을 했느냐다. 이들이 이미 기소된 업무방해 혐의의 확대 적용과 관련된 문제다.
현재 드루킹 일당은 1월 17일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매크로를 이용해 문재인 정부 관련 기사 1건에 달린 정부 비판성 댓글 2건의 '공감' 클릭 수를 인위적으로 높여 여론을 조작한 혐의로만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대선 전부터 특정 정치인의 유·불리를 목적으로 댓글 활동을 했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언론 등에서 지속해서 제시됐다. 이후 수사 과정에서 의혹의 개연성에 무게가 더해지는 상황이다.
여죄 수사에 주력한 경찰은 이들이 종전에 확인된 기사 1건을 포함해 1월 17∼18일 이틀간 모두 676개 기사 댓글 2만여개에 매크로를 실행해 댓글 추천 수를 조작한 사실을 추가로 밝혀냈다.
이틀간 댓글조작에 쓰인 아이디는 2천290개다. 여기에는 드루킹이 운영한 인터넷 카페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 회원 아이디도 포함됐다.
이처럼 댓글조작 규모가 대폭 커지면서 애초 "보수진영 소행으로 보이려고 했다"거나 "인사 추천을 거절한 김경수 의원에게 불만이 있어 우발적으로 댓글조작을 지시했다"며 드루킹이 밝힌 범행 동기의 설득력은 떨어졌다.
이어 경찰은 지난 2일 드루킹 측근 김모씨(필명 '초뽀')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이동식 저장장치(USB)를 확보했다. USB에는 대선 7개월 전인 2016년 10월부터 올 3월까지 댓글 작업이 이뤄진 기사 9만건 관련 자료가 저장돼 있다.
이들 기사에 달린 댓글에도 매크로 조작이 있었다면, 기사 내용에 따라 어떤 목적으로 댓글조작을 벌였는지 추론할 수 있어 범행 동기를 규명할 실마리도 풀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경찰은 추가 증거를 축적하고, 기존 디지털 증거 등을 분석해 범죄 정황을 확인하면서 이를 토대로 관련자들을 압박해 이른 시일 내에 혐의를 소명하는 전략을 펼 것으로 보인다.
다만 범행에 관여한 것으로 의심되는 경공모 회원 중 일부가 댓글을 삭제하는 등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커 조치가 시급한 상황이다.
범행의 조직성과 의도를 밝힐 또 하나의 중요 단서는 드루킹 일당이 '킹크랩'이라 부른 서버다. 일당이 자체 구축한 킹크랩은 매크로 기능을 구현하는 서버로, 기존 매크로 프로그램보다 성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 전부터 매크로를 이용한 댓글조작이 있었고, 여기에 킹크랩이 쓰인 사실까지 확인된다면 뚜렷한 목적과 고의성을 띤 계획범죄로 볼 수 있다. 이런 혐의사실이 추가돼 유죄로 인정되면 드루킹 일당의 형량도 가중될 전망이다.
킹크랩 서버가 외국에 있어 당장 수사 협조를 받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지만, 경찰은 관련 자료 확보를 위해 다양한 수단을 검토하고 있다.
이밖에 경공모 회원으로 파악된 공무원들이 댓글조작 사실을 알고도 아이디를 빌려줬는지,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누리꾼인 '달빛기사단' 등 다른 이들이 매크로를 이용한 댓글 작업에 관련됐는지 등도 아직 규명되지 않은 의혹이다.
◇ 김경수 연루 여부는 미궁…경찰 "끝까지 파헤친다"
사건의 또 다른 축인 김경수 의원의 댓글조작 연루 여부는 실체 규명까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김 의원이 대선 전부터 약 1년간 드루킹에게 기사 인터넷 주소(URL)를 보내며 홍보를 요청했고, 드루킹이 '처리하겠다'고 답하는 등 두 사람 사이를 의심하게 할 정황이 있어 경찰도 관련 증거와 진술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핵심은 김 의원이 드루킹에게 매크로를 이용한 댓글조작을 직접 지시하거나 최소한 이를 보고받아 알고 있었다는 증거 또는 진술이 나오느냐다.
그러나 앞서 김 의원의 통화내역·금융계좌 추적용 압수수색영장이 검찰 단계에서 기각돼 경찰은 기초 증거수집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의혹 당사자에 대해 충분한 증거를 확보한 뒤 출석요구하는 통상적 수사 절차와 달리 별다른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채 참고인 신분으로 김 의원을 불러 '면죄부 소환', '패를 다 보여준 것 아니냐' 등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후 수사에서 김 의원이 거론된 의혹이 추가로 불거진 만큼 경찰이 그를 재소환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드루킹은 대선 후 김 의원에게 경공모 회원을 오사카 총영사로 인사 추천한 뒤 관련 편의를 얻고자 김 의원 보좌관에게 500만원을 건넨 것으로 드러났다. 경공모가 대선 전인 2016년 11월 김 의원 후원에 관여한 정황도 확인됐다.
경찰은 외부의 비판과 상관없이 김 의원 관련 의혹의 실체도 끝까지 파헤친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팀은 확보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확보하면서 뭔가 나오면 나오는 대로 수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런 입장에도 불구하고 수사 속도는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압수수색영장 기각이나 혐의 노출로 강제수사 효과나 수사의 '밀행성'은 사라졌다. 일각에서는 '철저한 수사를 명분으로 늑장수사 하는 것 아니냐, 의지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드루킹은 이미 기소돼 재판 중이고 관련자들이 수사 윤곽을 파악한 만큼 증거인멸이나 말맞추기를 막으려면 신속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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