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억류 미국인 석방에 日 기대감 고조…납북자 문제도 진전보나
북한과 인권문제 관련 협상 성공사례 '주목'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북한에 억류됐던 한국계 미국인들이 석방되면서 일본인 납북자 문제에서도 진전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일본 내에서 커지고 있다.
10일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인 납치 피해자 요코타 메구미(橫田 めぐみ·실종 당시 13세) 씨의 어머니 요코타 사키에(早紀江·82)씨는 "3인의 미국인을 석방할 수 있다면 일본인 피해자도 석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북한은 비열한 행동을 중단해야 한다. 일본 정부도 모든 일본인의 즉시 귀국을 목표로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일본인 납북자 문제는 피해자의 입국 방식이나 억류 혹은 납치가 이뤄진 시점 등에서 이번에 풀려난 미국인들과 적잖은 차이가 있다.
미국인들의 경우 1~3년 전 북한에 초청 등으로 입국해 스파이나 적대행위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반면 일본인 피해자들은 납치돼 끌려간데다 피랍 시점도 40여년 전이다.
미국인 억류의 경우 최소한 형식적으로는 북한의 법 집행 결과이지만, 일본인 납치는 국가 차원에서 저지른 범죄라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납치 피해자의 가족들은 최근 한반도 화해 국면에서 북한과의 인권 문제 관련 협상의 성공 사례가 처음 나온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이번 석방 사례처럼 국가간 협상을 통해 자국에 송환되는 것은 일본의 납북 피해자 가족들이나 일본 정부가 염두에 두고 있는 납치 문제 해결 방식이기도 하다.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실종 당시 22세) 씨의 장남인 이즈카 고이치로(飯塚耕一郞.41) 씨는 "북한이 인권 문제에 대해 노력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며 "비핵화와 미사일 문제보다 피랍자 귀국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이번 석방 방식이 일본(의 납치 피해자)에 대해서도 들어 맞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에서 납치 문제의 진전은 북일간 정상회담 성사의 전제 조건이다. 그간 대북 압력 일변도 정책을 주장해온 일본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를 위해 납치 문제의 진전이라는 명분이 필요한 상황이다.
아베 총리는 '재팬 패싱'(일본 배제) 비판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북일 정상회담과 일본인 피랍문제에서 진전을 이뤄내야 하는 처지이기도 하다. 양국간 정상회담은 북한에는 식민지 배상을 명분으로 한 경제 지원을 얻어낼 수 있는 기회다.
북한과 일본은 물밑 접촉을 계속하며 납치 문제 해결과 북일 정상회담 성사를 도모하고 있지만, 납북자 현황에 대해 양측의 입장차가 커서 난항을 겪고 있다.
일본 정부는 납치 피해자 수가 17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납치 피해자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납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특정실종자'는 883명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13명을 일본인 납북자로 인정하면서 이 중 8명이 숨지고 5명이 본국으로 송환돼 현재 생존하는 일본인 납북자는 없다고 주장하며 '문제 해결이 끝났다'는 입장을 거듭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납치 문제의 진전 혹은 해결을 통해 사학스캔들 등으로 내각 지지율이 급락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경우 총리 재직 중이던 2002년과 2004년 2차례나 평양을 방문해 납치 피해자의 잔류 가족들을 일본으로 데려오는 성과를 거뒀고, 그 결과 내각 지지율이 10~20%포인트 상승해 50~60%대로 뛰는 효과를 보기도 했다.
아베 총리 스스로도 과거 납치 문제의 진전을 통해 스타 정치인이 된 이력이 있다.
아베 총리는 관방장관 시절인 지난 2002년 고이즈미 총리의 평양행에 동행해 북한이 일본인 납치 사건을 시인하고 사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바 있다.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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