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 르포] "이제 어떻게 되나"…미 핵합의 위반에 민심 불안

입력 2018-05-09 19:37
[테헤란 르포] "이제 어떻게 되나"…미 핵합의 위반에 민심 불안

"평소보다 주유소에 긴 줄"…달러 '사재기' 심해져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미국이 이란에 대한 제재를 되살린다고 발표한 이튿날인 9일(현지시간) 아침 테헤란의 하늘엔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이내 천둥소리가 나고 소낙비가 내렸다.

비가 드문 중동에서 비는 더욱 반가운 손님이어서 알라(신)의 은총으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간밤에 미국에서 들려온 소식에 이날 아침만은 비가 테헤란 시민들의 심란함을 더하는 듯했다.

출근길에 신문 가판대에서 일간지를 읽던 호세인(30) 씨는 "트럼프의 발표를 예상은 했지만 막상 접하고 보니 화가 난다"면서 "미국이 핵합의를 취소했는데 나머지 정부가 이를 계속 지킬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란은 미국에 어떤 피해도 입히지 않는데 미국은 이란을 지난 40년간 괴롭혔다"면서 "자원이 풍부한 이란이 경제가 어려운 것은 미국 정권이 자기들의 정치적 필요 때문에 이란을 적대시하기 때문이다"라고 비난했다.

그가 있던 가판대에는 30여 개의 현지 언론이 일제히 미국의 핵합의 위반을 1면으로 보도했다.

보수 성향의 신문은 정부의 나약함을 비판했고, 중도·개혁파의 정부를 지지하는 신문들은 유럽과 함께 핵합의를 지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반미 감정과 이란 정부에 대한 불만이 뒤섞인 반응이 8일 밤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쏟아져 나왔다.

한 이란 네티즌은 "정부는 그냥 걱정하지 말라고만 한다"면서 "어차피 유럽도 이란을 배신할 텐데 우리도 핵합의에서 탈퇴해 핵무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미 감정과는 별도로 미국의 제재가 3개월 뒤 되살아나면 그렇지 않아도 사정이 좋지 않은 이란 경제가 더 악화할 수 있다는 걱정과 불안이 커지고 있다.

테헤란 북부의 한 주유소에서 일하는 직원은 "평일 아침엔 기름을 넣으려는 차가 별로 없는데 오늘은 긴 줄이 생겼다"면서 "사람들이 불안한 마음에 차에 휘발유를 가득 넣으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란 정부는 미국의 핵합의 위반에 대비해 지난달 10일 달러화 대비 이란 리알화의 환율을 4만2천 리알로 단일화했다.

그러나 9일 오전 암시장에서 이 환율은 7만 리알까지 올랐다.

한 슈퍼마켓 주인은 '환율이 너무 빨리 올라 나갔다가 다시 오면 가격이 오를 테니 지금 바로 물건을 사세요'라는 안내문을 부착했다.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는 베흐람(51) 씨는 "다들 불안해 웃돈을 주고서라도 달러를 되는대로 확보하려고 한다"면서 "(미국과 유럽이 동시에 제재한) 2012년과 같은 상황이 되면 이란 국민이 매우 힘들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대학생 샤러버드(21) 씨는 "앞을 볼 수 없는 밤길을 가는 것 같다"고 불안함을 내비쳤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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