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간판따라 신분 나뉘는 사회, 정상인가요?"

입력 2018-05-09 17:38
장강명 "간판따라 신분 나뉘는 사회, 정상인가요?"

문학상 공모와 기업 공채 시스템 분석한 르포 '당선, 합격, 계급'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한국은 어떤 종류의 계급사회인데, 한 축은 상속과 부의 대물림이고, 또 한 축이 시험과 시험을 통해 얻는 간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의 대물림은 당연히 안 좋은 것이고, 다른 한 축인 시험사회, 간판사회에 대해 궁금한 점과 문제점을 제대로 따져보고 싶었습니다."

신작 르포 '당선, 합격, 계급'(민음사)을 펴낸 소설가 장강명(43)은 지난 8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내가 소설가가 되고 전업작가가 된 뒤에 문학공모전 문을 많이 두드렸는데, 왜 우리나라에서 소설가가 되려면 20대에 신춘문예를 준비하고 공모전에 당선돼야 하는지 궁금했다. 이런 시스템이 한국에만 있고 작가지망생들이 매달리고 있는데, 이게 정상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원인이 한국의 다른 인재 선발 제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문학공모전과 공채 제도를 적절히 섞어서 전체 시스템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 책은 문학상 공모전과 대기업 공채 방식에 상당한 공통점이 있으며, 이것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속성을 보여준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다. 이 두 가지를 연결해 생각하기가 쉽지는 않은 일인데, 작가의 평범치 않은 이력과 관련이 커 보인다.

그는 공채를 거쳐 삼성그룹 계열 건설사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얼마 뒤 회사를 박차고 나와 언론사 공채를 거쳐 동아일보 기자로 11년간 일했다. 기자를 그만두고서는 전업 작가로 나서 각종 장편소설문학상 공모에 도전해 무려 4관왕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열광금지, 에바로드'로 수림문학상을, '댓글부대'로 제주4·3평화문학상을,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그는 이런 공채·공모전 수혜자가 되긴 했지만, 이 시스템이 상당 부분 운이나 심사자 취향에 좌우될 수 있는, 전문성이나 본질에서 벗어난 시험, 선발 과정을 통해 진짜 재능있는 사람을 뽑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창의성과 딱히 관련 없어 보이는 삼성그룹 직무적성검사 시험문제, 공무원 본연의 업무와 관련 없는 공무원시험 문제, 노조에 관한 견해를 묻거나 응시자를 괜히 주눅 들게 하는 압박면접 같은 과정들이 그 예다. 언론사 공채 시험 역시 요즘 인터넷으로 검색만 하면 나오는 상식 문제를 달달 외우게 하는 자잘한 문제가 많다. 그는 기자생활을 하면서 그런 시험 내용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점차 나는 '어떤 젊은이가 기자로서 성공할지 안 할지 시험이나 면접으로 예단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자 일을 시켜 봐야 안다.'라고 생각하게 됐다.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한국의 신입 기자 채용 방식을 듣고 큰 소리로 웃은 미국 기자들이 옳았다. 어떻게 저널리스트들을 시험을 쳐서 뽑을 수 있는가. 저널리스트로서의 잠재력을 어떻게 필기시험이나 면접 평가로 알아볼 수 있단 말인가." (본문 158∼159쪽)

이런 문제는 공모전에 당선된 작가에게 '수상 작가'라는 간판을 주는 문학 분야도 마찬가지라고 그는 말한다. 본인이 직접 심사 과정에 참여한 경험을 보더라도 1차로 한 심사자가 수십 편 응모작을 보고 그에서 한두 편만 거르는 과정에서 심사자 고유의 취향이나 편견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러 문학상 심사위원이 주로 평론가, 기성작가들이어서 전복적인 작품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구조도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런 공채나 공모전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만이 전부이고 절대적인 것으로 인정되는 현실이다. 당선-합격이 공인된 '간판'이 되고, 우리 사회가 그 간판만을 기준으로 사람을 대우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그 간판 따기에 목을 매게 된다는 것이다. 일단 간판을 딴 사람들에게는 능력 평가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그 내용이 외부에 공개되지도 않는다. 예산을 지원받아 해외 연수까지 다녀온 일부 영어교사의 토익 점수가 400점대라는 사실이 알려진 2015년의 한 언론 보도,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자격이 박탈되지 않는 의사, 약사, 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종 실태가 그렇다.

"많은 젊은이들이 그토록 되고 싶어 하는 한국 대기업 직원들의 업무 수행 능력은 어떨까. 외국 기업들에 비해 뛰어나다고 할 수 있을까. 한국 대기업은 어느 직원이 일을 잘하는지 제대로 평가해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하고 승진에도 반영하는가. 그렇게 합리적인 곳인가. 오히려 반대로 구조 조정을 해야 할 때조차 직원의 업무 능력이 아니라 가족이 몇 명인지를 따지는, 정실 문화와 온정주의가 지배하는 곳 아닌가. 대학은 어떤가. 소위 명문대라는 한국 대학에 들어가기가 어려운가, 거기서 졸업하기가 어려운가." (320쪽)

그는 이런 간판사회의 대안으로 많은 정보의 투명한 공개-공유를 주장한다.

"사실 이 책은 문제 제기에 더 비중을 뒀는데요. 대안이라면 간판 외에는 '깜깜이'인 시장을 환하게 밝히자는 것입니다. 간판사회의 제일 큰 동력이 간판 말고는 달리 평가할 수 있는 정보가 없어서 안전한 선택으로 명문대 같은 간판이 있는 사람, '문학상'이라는 간판이 달린 책을 택하게 된다는 것인데요. 제 생각은 사람이든 책이든 평가할 수 있는 정보를 많이 공유하고 쌓자는 거예요. 책의 경우에는 독자들이 서평을 공유하는 시장을 키운다든지 하는 방식을 생각할 수 있겠죠."

이 책에는 수많은 통계와 언론보도, 관련자들 인터뷰 내용이 담겼다. 전체 450쪽 분량의 대부분이 이런 취재 내용이다. 2015년 4월부터 시작해 집필까지 3년가량 걸렸다.

"제가 보통 소설 쓸 때도 취재를 하긴 하는데, 르포를 쓰려니 모든 과정을 다 팩트로 보여줘야 해서 생각보다 품이 되게 많이 들었어요. 그래도 좋았던 게 원 없이 취재할 수 있었던 거예요. 기자 시절엔 매번 바쁘고 시간이 없어서 100%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피상적으로 기사를 쓰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번에는 스스로 납득될 때까지 충분히 취재할 수 있어서 좋았죠."

그는 "앞으로 소설과 함께 논픽션도 많이 쓰고 싶은데, 너무 힘들어서 적당히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며 웃었다.

"제가 글을 쓰는 동력이 내가 사는 당대의 부조리한 것을 보고 따지거나 질문하는 그런 마음인 것 같아요. '뭐 좀 잘못된 거 아냐?' 묻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 글을 쓰게 되죠. 어떤 질문은 소설로 할 때 힘이 있는 것 같은데, 사람 내면을 이야기할 때, 한국이 싫어 떠나는 사람의 이야기는 소설('한국이 싫어서')이 좋은 것 같고요. 이런 인재 선발 시험으로 등급을 나누고 그러는 게 이상하지 않느냐 하는 질문은 논픽션으로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제가 너무 쓰고 싶어서 썼는데 독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네요."

그는 최근 논픽션을 한 편 더 썼는데, 이 책도 곧 출간 예정이다. 지난 1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에 초청된 탈북자 지성호 씨의 증언을 담은 북한인권에 관한 책이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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