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핵합의 파기, 제조업에 타격…"생산·소비에 모두 부정적"
유가는 당분간 강세유지 전망…시간외거래 WTI 70달러 회복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탈퇴와 강력한 대이란 제재 방침을 선언하면서 세계 경제가 그 여파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20조원 규모의 항공기를 수출하기로 했던 보잉은 거래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으며 이미 강세인 국제유가의 상승을 더 부추겨 산업생산과 자동차 시장 등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AP통신과 CNN머니에 따르면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8일(현지시간) 이란에 대한 보잉과 에어버스의 민항기 수출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90일의 제재 유예기간이 끝나는 대로 "현재의 허가는 취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보잉은 이란항공과 항공기 80대 판매 계약을 맺었으며 이란 아세만항공에도 30대를 판매하기로 했다. 보잉이 밝힌 두 항공사와의 거래 규모는 모두 190억 달러(약 20조5천억원)지만, 이란 관계자들은 실제 구매가가 100억 달러에 더 가깝다고 전했다.
유럽 기업인 에어버스는 미 앨라배마에 공장을 두고 있으며 역시 이란에 100대를 판매할 예정이었다.
다른 제조업체와 에너지업체 등도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 제조업 공룡 제너럴일렉트릭(GE)은 이란으로부터 작년에만 가스 플랜트 설비와 기계 부품을 포함해 수백만 달러 규모의 수주에 성공했다.
미국뿐 아니라 다른 국가 기업들도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핵 합의에 참여한 다른 국가들은 합의 준수 의사를 밝혔으나 이들 국가의 기업들은 원자재와 부품 조달, 생산, 판매 등의 측면에서 다국적으로 얽혀 있어 미국의 영향력을 차단할 수 없다.
프랑스 석유업체 토탈은 지난해 이란 사우스파르스의 세계 최대 규모의 가스전 개발 사업에 참여하기로 하고 20억 달러(약 2조2천억원)의 거래에 합의했으며 독일 폴크스바겐은 17년 만에 처음으로 자동차를 판매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제조업뿐 아니라 제재 완화 이후 직항을 취항한 브리티시에어웨이스와 루프트한자 등 유럽 항공사들, 이란에 처음으로 호텔 문을 연 국제 호텔체인 프랑스 앙코르와 개장 계획을 알린 스페인 멜리아 등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관측됐다.
핵 합의 파기의 결과로 유가가 오르면 자동차 구매를 포함한 소비자들의 지출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모하메드 바르킨도 석유수출국기구(OPEC) 사무총장은 이날 CNN머니와의 인터뷰에서 "공급이나 수요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떤 요인이든 의심할 여지 없이 시장을 불안으로 몰아넣을 것"이라며 "이는 생산자든 소비자든 득이 되지 못한다"고 우려했다.
국제유가의 향배는 각 산업뿐 아니라 세계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메가톤급 재료다.
이날 원유 시장에선 유가가 하락했지만 시간 외 거래에서는 상승세로 돌아서 하락분을 되돌렸다.
8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6월물은 배럴당 69.06달러로 전날보다 1.67달러(2.4%) 하락했고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7월물 브렌트유는 배럴당 1.32달러(1.32%) 내려 74.85달러에 거래됐다.
하지만 유가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은 여전하다. 핵 합의 이후 하루 100만 배럴 늘어난 이란산 원유 공급량이 작다고 볼 수 없고 중동 정정불안 리스크가 커졌기 때문이다.
바르킨도 사무총장은 지정학적 긴장감에 따라 '때때로 시장에 찾아오는 변동성'이 국제유가 상승의 동력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시간 9일 오전 9시 30분 현재 브렌트유 7월물은 76.25달러로 1.40달러 올랐고 WTI 6월물도 70.16달러에 달해 다시 70달러대로 올라섰다.
제럴드 베일리 페트로테크에너지 회장은 마켓워치에 "급등까지는 아니더라도 불확실성이 있다"며 "만약에 이란이 핵실험 재개를 추진하고 이에 미국이 어떤 식으로든 대응하면 가격은 더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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