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참전 伊 용사 딸, 로마에서 염수정 추기경과 뜻깊은 만남
"남북 화해, 모든 참전용사·가족들의 한결같은 바람"
염 추기경, 로마 한인성당서 한반도 평화염원 담은 '평화의 모후상' 축복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한국전쟁에 의무병으로 참전해 헌신한 이탈리아 참전용사의 딸과 염수정 추기경이 이탈리아에서 뜻깊은 만남을 가졌다.
6일 오전(현지시간) 로마 동남부 외곽에 위치한 한인 성당.
로마를 방문 중인 염수정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이 집전한 이날 미사에는 벽안의 이탈리아인들이 자리를 함께 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이탈리아 적십자사 68 야전병원 소속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고(故) 에밀리오 도나토니의 딸 카티아 도나토니와 그의 남편, 그의 친구들이었다.
북부 베로나에 거주하는 도나토니 씨는 꼭 2년 전 이날 타계한 아버지의 기일을 맞아 그동안 한국이 보여준 관심과 애정에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주이탈리아 한국대사관의 제안으로 한인 성당의 미사에 특별히 참석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는 한국 가톨릭을 대표하는 추기경이 이날 미사를 집전한다는 소식에 흔쾌히 발걸음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염수정 추기경은 미사 도중 "오늘 미사에는 한반도를 위해 헌신한 이탈리아 참전 용사의 가족이 함께 해 더 의미가 깊다"고 말하며 이들을 따뜻하게 환영했다.
미사 후에는 별세한 도나토니 씨의 아버지를 주제로 담소를 나누고, 도나토니 씨에게 안수 기도를 하며 참전용사의 후손을 축복했다.
염 추기경은 도나토니 씨가 올 가을 주이탈리아 한국대사관 등의 도움으로 방한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한국에 오면 꼭 다시 만나자"고 당부하기도 했다.
도나토니 씨는 "아버지는 돌아가시는 날까지 한국에 대해 이야기를 할 만큼 한국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오늘 미사에 참석해보니 아버지가 생전 왜 그렇게 한국과 한국인들을 좋아했는지를 확실히 알게 됐다. 당신들은 정말 특별한 민족"이라고 말하며 환대에 사의를 표현했다.
그는 "한국인들이 젊은 시절 아버지가 한국에서 한 일을 잊지 않고, 기억해줘 너무 감사하다"며 "과거를 너무 쉽게 잊는 이 시대에 한국이 참전용사와 그 가족들에게 꾸준히 관심을 보여주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도,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버지가 지난 달 27일 열린 남북 정상회담을 보셨으면 너무 기뻐하셨을 것"이라며 "모쪼록 평화를 위한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 남한과 북한이 진정한 화해를 이루는 것이 아버지처럼 젊음을 바쳐 헌신한 참전 용사들과 그 가족들의 공통적인 바람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탈리아 적십자사 68 야전병원 소속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이탈리아 의무병 128명은 68 야전병원이 부상병과 한국 민간인 수용과 치료를 위해 서울 영등포에 설립한 병원에서 종전 후인 1955년 초까지 머물며 의료 활동을 했다. 당시 참전 용사 중에는 현재 단 1명만이 이탈리아 북부 리구리아 주에 생존해 있다.
한편, 이날 한인성당에서는 염 추기경의 집전으로 '평화의 모후상'(Regina Pacis) 축복식도 열렸다.
로마 북부 비테르보의 한국 수도 공동체인 프란치스코 전교봉사회 이탈리아 분원에 자리해 있던 이 성모상은 2015년 수도원이 문을 닫게 되자 로마 한인신학원으로 옮겨졌고, 이날 염 추기경의 축복으로 '평화의 모후'라는 호칭을 얻게 됐다.
지난 달 열린 역사적 남북 정상회담에서 이뤄진 남북 화해를 위한 첫 걸음을 기념하는 동시에 세계 평화를 염원하는 뜻에서 가톨릭 평화와 자비의 상징인 성모 마리아상에 새롭게 '평화의 모후'라는 칭호를 헌정했다고 로마 한인성당측은 설명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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