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이 바보, 유은총 언니'…여자탁구 남북 자매의 '우정'

입력 2018-05-05 09:07
'김송이 바보, 유은총 언니'…여자탁구 남북 자매의 '우정'

대형 한반도기에 이름 적고 소형 한반도기에 추억 남겨

북한 김송이 '김송이 바보, 유은총 언니'라고 적어 선물



(서울=연합뉴스) 이동칠 기자 = '김송이 바보, 유은총 언니.'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이후 27년 만에 결성된 여자 탁구 남북 단일팀의 북한 선수 김송이(23)가 한국의 유은총(24·포스코에너지)에게 소형 한반도기에 적어준 문구다.

북한의 간판 김송이는 4일(한국시간) 스웨덴 할름스타드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 여자단체전 준결승에서 남북 단일팀의 두 번째 단식에 나섰지만, 일본의 에이스 이시카와 가스미에게 풀세트 대결 끝에 2-3으로 졌다.



세계랭킹 49위의 김송이가 세계 3위의 이시카와를 상대로 선전했지만, 최종 5세트 듀스 접전에서 역전패를 당한 게 아쉬웠다.

4강 한일전이 끝난 후 선수들은 국제탁구연맹(ITTF)이 제공한 대형 한반도기에 각자 이름을 적어 넣었다.



이어 소형 한반도기가 그려진 종이에는 선수들의 사인과 전하고 싶은 내용을 적었다.

북한의 김송이는 한 살 많은 유은총에게 '김송이 바보, 유은총 언니'라고 썼다.

전날 남북 합동훈련 때 연습경기에서 자신을 이긴 유은총이 '바보'라고 놀린 걸 상기시킨 것이다. 둘은 언니와 동생으로 농담도 하고 셀카도 찍으며 대회가 끝나면 헤어져야 하는 아쉬움을 달랬다.



유은총은 일본과의 경기에 나서지 않았으나 벤치에서 누구보다 김송이를 열렬히 응원했다. 김송이가 실수할 때는 '괜찮아, 힘내'라며 용기를 북돋우기도 했다.

그는 4강 탈락을 아쉬워하는 김송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유은총은 "이제 (북한 선수들과) 떨어지게 돼 아쉽다"면서도 "그렇지만 슬픈 분위기는 아니었다. 또 볼 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오는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때 다시 단일팀을 이룰 것이라는 기대감 덕분이다.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더라도 이번 세계선수권처럼 출전 엔트리를 두 배로 확대해준다면 선수들의 피해도 줄일 수 있다.

ITTF는 남북 선수 9명(한국 5명, 북한 4명) 전원을 단일팀 멤버로 벤치에 앉도록 했고, 준결승 진출로 이미 확보한 동메달을 시상식에서 9명 전원에게 주기로 했다.

남북 선수들은 그동안 국제대회에서 자주 만나 우정을 쌓아왔다.

세계선수권 단체전은 2년마다 열린다. 북한은 2016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대회 때 김송이를 앞세워 동메달을 획득했다.

또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은 물론 ITTF 투어로 진행되는 오픈대회에서도 자주 만나 낯이 익다.

그동안 경색된 남북 관계 때문에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아는 체를 못 했지만, 경기장 안에서는 오가며 대화도 나누기도 했다.

지난달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이 화해 무드에 접어들면서 선수들은 그동안 담아뒀던 친근함을 표현하며 남북 자매의 우애를 과시했다.

chil881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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