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암 환아 위해 머리카락 '싹둑'…병동에선 '재능기부'

입력 2018-05-05 07:01
수정 2018-05-05 08:16
소아암 환아 위해 머리카락 '싹둑'…병동에선 '재능기부'

전선우·연우 자매 '모발기부'…"염색·파마 못 해도 뿌듯"

소아암 완치자·퇴직교사도 환아에게 배움 '선사'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소아암으로 투병하는 환아들에게 '행복'을 선물하는 기부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어린 자매가 병마와 싸우는 또래 친구에게 가발을 선물하고자 머리카락을 자르고, 정년이 넘은 교사는 소아암 치료병원으로 돌아가 다시 교편을 잡았다.

8살과 5살짜리 자매가 어깨를 훌쩍 넘게 길러온 머리카락을 귀밑까지 짧게 잘랐다.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진 소아암 환자들에게 가발을 마련해주기 위해서다.

5일 '모발기부' 후원을 받는 백혈병소아암협회에는 전선우(8·여)·연우(5·여) 자매의 머리카락이 도착했다.

자매는 2년 전 어머니 권유로 모발기부에 참여하게 됐다. 염색이나 파마를 한 모발은 가발에 사용할 수 없다는 말에도 언니인 선우양은 멋을 부리는 정도는 참을 수 있다고 했다.

머리카락을 자른 날 선우양은 "왜 그렇게 짧게 잘랐니"라고 묻는 주변 어른들의 질문에 "저 기부했어요"라고 의젓하게 대답했다고 한다.

동생 연우양은 이날 태어나 두 번째로 머리카락을 잘랐다. 두 살 때 자른 이후 처음이다. 언니를 따라 머리를 기르면서 "파마를 하고 싶다"고 불평하기도 했지만, 막상 머리카락을 자른 뒤에는 얼굴에 뿌듯한 기색이 역력했다.

자매의 어머니 이유리(44)씨는 "딸들에게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란 점을 가르쳐 주고 싶어 권유하게 됐다"며 "처음에는 '아이들이 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는데 큰딸이 흔쾌히 응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사내아이 마냥 짧아진 아이들 머리를 보고 놀랐는데 오히려 아이들은 좋아했다"며 "이번 기부로 나누는 기쁨을 아이들이 알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소아암과 싸우는 동안 사회단체의 도움을 받다 완치된 후에는 소아암 환자들을 위해 자원봉사활동을 펴는 경우도 있다.

14살에 악성림프종 진단을 받은 박정석(23·여)씨는 6년간의 투병생활 끝에 완치됐고 현재는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새 삶을 살고 있다.

투병생활 중 아픔을 잊기 위해 시작한 동양화 그리기를 직업으로 삼아 지난해부터는 병원에서 그림 교육 봉사를 진행 중이다.

그는 "봉사활동에 가면 소아암 환자들이 완치 뒤에 학교를 어떻게 다녀야 할지,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많이 물어본다"며 "완치가 되면 해피엔딩일 것 같지만, 사회에 나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투병 중이거나 완치된 소아암 친구들을 사회로 이끌 수 있는 동반자가 되고 싶다"며 소아암 환자와 완치자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심볼 상품을 제작해 판매하고 수익금을 병원에 기부하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34년간 학교에서 잡았던 교편을 퇴직 후 병원에서 다시 잡은 선생님도 있다.

문희철(71)씨는 2002년부터 고대구로병원 '병원학교'에서 소아암 환아들에게 수학 수업을 하고 있다. 병원학교는 치료 때문에 장기간 학교를 빠져야 하는 소아암 환자 등을 위해 제공하는 학교다.

그는 수요일마다 한 시간씩 병원건물에 마련된 교실에서 '놀이 수학'을 가르친다. 아픈 아이들이 쉽게 수학에 흥미를 붙일 수 있도록 직접 지어낸 이름이다. 주로 초등학생 환자들이 문씨의 수업을 듣는다.

문씨는 "두세 번 반복해 입원하는 아이들이 있다"며 "안 왔으면 좋겠는데 다시 학교에 오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픈 몸으로도 수업에 따라오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다"고 전했다.

ae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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