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 투자한 中 재벌이 사정 칼바람에도 건재한 이유는

입력 2018-05-04 16:43
축구에 투자한 中 재벌이 사정 칼바람에도 건재한 이유는

FT "중국 재벌들, 사업상 목적으로 축구 인맥 활용"

(서울=연합뉴스) 정재용 기자 =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재벌 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에서 축구에 투자한 중국 재벌들은 상대적으로 건재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4일 '축구에 투자한 중국의 재벌은 어떻게 정부의 단속에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중국 재벌과 축구의 관계를 소개했다.

FT에 따르면 왕젠린(王健林) 다롄완다(大連萬達) 그룹 회장이 2015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소속 프로축구팀 가운데 하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지분 20%를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중국의 재벌들을 앞다퉈 유럽 축구팀에 대한 투자에 나섰다.



중국 재벌이 유럽 축구팀에 투자한 액수만 25억 달러(약 2조6천870억 원)에 달한다.

중국 재벌이 투자한 유럽 축구팀은 맨체스터시티, AC 밀란, 인터 밀란 등 유럽 명문 팀 뿐 아니라 프랑스의 오세르 등 그다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팀까지 다양하다.

예를 들면 '중국판 루퍼트 머독'이라 불리는 리루이강(黎瑞剛) 차이나미디어캐피털(CMC) 회장은 맨체스터시티에 투자했으며, 트위터의 권위자로 알려진 토니샤는 애스턴 빌라에 투자했다.

이들은 투자 목적은 제각각이다. 흥밋거리로 투자한 재벌도 있고, 금융 면에서 성공하기 위한 투자한 재벌도 있다.

특히 상당수의 재벌은 축구광으로 알려진 시 주석으로부터 점수를 따려고 외국의 축구팀에 투자했다고 FT는 전했다.

시 주석은 중국 축구를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자며 '축구굴기'를 주창한 바 있다.

이처럼 시 주석의 '축구굴기'에 호응해 해외 축구팀 투자에 앞장섰던 중국의 재벌들은 시 주석이 재벌 개혁에 박차를 가하자 해외 축구팀 투자자금을 회수하고 국내 프로축구팀에 투자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인 왕젠린 회장이다. 그는 지난 2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지분 17%를 5천만 유로에 매각했다. 매매차익은 500만 유로에 불과하다.

대신 왕젠린 회장은 19년 만에 그룹 출발지인 랴오닝(遼寧)성 다롄을 연고로 하는 프로축구팀을 부활했다.

중국 중앙인민라디오방송의 인터넷판 양광망(央廣網)에 따르면 다롄완다그룹은 지난 2월 중국 프로축구 슈퍼리그(CSL) 소속 다롄이팡(大連一方)팀을 인수해 올 시즌부터 리그에 합류하기로 했다.

축구에 투자한 중국 재벌들의 재빠른 변신을 보면 중국 재벌이 중국 공산당 지도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통상적으로 중국에선 국가가 특정 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신호를 보내면 국영 및 민영은행의 자금을 지원받는 막대한 투자가 뒤를 따른다. 하지만 이후 정부가 과잉투자와 부채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면 투자는 갑자기 중단된다.

이는 부동산 투자건, 축구건 중국의 투자 과정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베이징에서 '차이나 스포츠 인사이트'라는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마크 드레이어 씨는 "축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전형적인 중국적 현상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 축구 정책은 중국 프로축구 슈퍼리그(CSL)를 단기간 내에 육성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자 완젠린 회장을 비롯한 중국의 재벌들은 중국 국내 프로선수들을 지원하고 축구 꿈나무들을 육성하고 훈련 시설을 개설하는 쪽으로 투자 방향을 바꾼 것이다.

국제축구연맹(FIFA)는 각국 축구협회에 정치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고 있지만, 중국에서 공산당의 축구에 대한 영향력을 점점 커지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중국 축구협회 관계자는 지난 3월 프로축구 슈퍼리그 개막전에 앞서 구단주들과 모임을 하고 시 주석의 사상을 학습하고 이행할 것과 축구를 발전시키는 게 시 주석의 '중국몽'을 실현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축구에 투자하는 중국의 재벌들도 프로축구팀 운영을 통해 당장 이익을 얻기를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축구 인맥 활용이라는 부수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고, 부동산 개발이나 상업과 같은 다른 사업에도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경영 컨설팅 자문업체인 딜로이트의 스포츠 사업 분야 책임자 니키 왕은 "정부 고위층들이 축구에 관해 관심이 매우 높다"면서 "우리가 중국 축구의 발전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jj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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