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보는 몰수하는데 공주 인장은 경매서 사온 까닭은

입력 2018-05-03 19:45
어보는 몰수하는데 공주 인장은 경매서 사온 까닭은

"결혼한 공주 인장은 왕실유산에 포함 안 돼"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조선 마지막 공주인 덕온공주(1822∼1844)가 사용한 인장(印章)이 미국 경매를 거쳐 이달 중순께 한국에 돌아온다. 알 수 없는 시점에 외국으로 유출됐던 소중한 문화유산의 귀환이다.

3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해외 문화재 조사와 환수 업무를 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덕온공주 인장의 경매 출품 사실을 인지한 시점은 2월 초.

재단은 현지조사와 법률 검토 결과, 덕온공주 인장이 어보처럼 왕실유산에 포함되지 않아 매매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재단은 지난달 18일 미국 크리스티 경매에 참가해 낙찰가 19만 달러(약 2억원)에 인장을 사들였다.



그런데 LA카운티박물관이 2000년 구매한 문정왕후 어보와 현종 어보는 몰수 절차를 통해 지난해 고국 품에 안겼다.

또 조선 인조 계비인 장렬왕후 어보를 미국 경매에서 사들인 문화재 수집가는 어보를 국립고궁박물관에 인도했으나, 돈을 받지 못해 문화재청과 소송 중이다.

조선 어보(御寶)는 왕과 왕비, 세자와 세자빈을 위해 제작한 의례용 도장으로 왕실 정통성과 권위를 상징하는 유물이다. 조선과 대한제국이 만든 어보는 모두 375점으로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상당수가 분실됐고, 지금도 40여 점은 오리무중이다.

문화재청은 조선왕실 재산이었던 어보는 정부 소유 도난 문화재로 간주한다. 장렬왕후 어보 구매자에게 판매 대금을 건네지 않은 이유도 경매가 열리기 전 미국 정부에 불법 유통할 수 없는 도난품임을 알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덕온공주 인장은 왕실재산이 아닌 공주 개인 소유품이었다. 조선에서 결혼한 공주는 부마(駙馬, 임금의 사위) 가문에 속했고, 공주 재산도 부마 가문에 귀속됐다.

성인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연구원은 "공주는 왕의 딸이지만 시집을 가면 사가(私家) 사람이 되는 이중적 지위에 있었다"며 "어보는 종묘에 봉안했지만, 공주 도장은 실제로 생활에서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공주 인장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어보보다 품격은 낮을 수 있어도 희소성은 분명히 있다고 강조했다.

현존하는 공주 인장은 고려대 박물관에 있는 숙휘공주(1642∼1696) 인장과 정명공주(1603∼1685) 인장 두 점뿐이다. 옹주 인장도 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인 영온옹주 인장 정도만 알려졌다.

성인근 연구원은 "어보는 만드는 방식이 천편일률적이지만, 공주 인장은 제작 기법이 그때그때 달랐던 것 같다"며 "덕온공주 인장은 손잡이 부분이 조형적으로 아름답고 서체나 조각 기법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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