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핵프로그램 폐기사례…남아공·리비아·우크라 방식 제각각
남아공 1989년 완성된 핵무기·프로그램 자발적 폐기
소련붕괴 후 우크라·카자흐·벨라루스 "필요없다" 러시아에 인도
리비아, 협상 1년만에 핵기술 반납…이란-6개국 핵합의 후 진통
(서울=연합뉴스) 김영현 기자 = 남북이 '4·27 판문점 선언'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공식화함에 따라 앞서 핵을 포기한 나라들의 사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30일 미국 뉴욕타임스(NYT), AP통신 등에 따르면 현대사에서 자발적으로 핵 프로그램을 포기한 나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등 단 네 나라뿐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1989년 스스로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6기의 핵무기를 폐기했다.
아울러 남아공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핵무기 관련 프로그램 일체를 넘겼다. 핵무기를 보유하면 국제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미국의 과학자 제러미 번스타인은 NYT 칼럼을 통해 완성된 핵무기와 개발 프로그램을 자발적으로 포기한 국가는 남아공이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남아공의 핵 포기는 모든 핵무기·고농축우라늄(HEU) 관련 시설 해체,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 IAEA 사찰 등의 절차로 이어졌다.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카자흐스탄은 1991년 소비에트연방이 붕괴하자 어느 날 갑자기 자국 영토에 실전 배치된 핵무기를 갖게 된 사례다.
미국,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등의 압박을 받은 이들은 경제 지원과 체제 보장을 받는 대가로 핵무기를 러시아에 넘겼다.
AP통신은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 이들 3개국은 핵무기를 보유할 뚜렷한 안보 이유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포기한 데는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도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 핵무기들은 모두 소련이 만든 것들이라 엄밀히 따지면 우크라이나 등이 자체 개발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브라질과 대만도 핵무기 개발에 나섰지만 실제 제작은 하지 않았다. 그 이전 단계에서 손을 뗐다.
최근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유지와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신경전을 벌이는 이란은 이들 나라와 상황이 조금 다르다.
핵무기를 실제 보유했는지는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지만 가장 최근인 2015년까지도 핵무기 개발에 힘써왔기 때문이다.
미국과 비밀리 협상을 진행하던 이란은 결국 2015년 7월 미국·영국·프랑스·독일·중국·러시아 등 주요 6개국과 핵 합의를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이란이 핵 프로그램을 중단하는 조건으로 서방이 이란에 대한 제재를 단계적으로 해체키로 한 합의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 체결된 이 협정을 트럼프 대통령은 '최악'이라며 무력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오는 5월 12일을 자체 시한으로 설정하고 재협상하지 않으면 대이란 제재유예를 연장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은 일몰규정 폐지, 탄도미사일 개발 저지, 역내 세력확장 억제 등을 반영한 타협안을 미국, 이란에 제시하며 중재에 나서고 있으나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리비아의 사례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북한의 비핵화 모델로 제시한 터라 가장 큰 주목을 받는다.
이 북아프리카 국가는 과거 미국과 적대적 상황에서 안보를 유지하고 국제사회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핵무기 개발에 나섰다.
하지만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은 국제사회의 제재와 안보 위협 등에 따라 2003년 핵을 포함한 대량파괴무기 포기를 선언했다.
당시 리비아는 굉장히 신속하게 핵을 포기했다.
핵포기 선언 이후 관련 시설·장비의 미국 이전과 IAEA의 핵사찰까지 1년이 걸리지 않았다.
NYT의 2003년 12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카다피는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침공이 막 시작될 때 미국, 영국 정부에 비밀리에 접근했다.
카다피 정권은 9개월 간의 비밀 외교접촉 끝에 광범위한 재래식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시인하고 국제 사찰을 받기로 했다.
리비아는 핵포기의 보상으로 제재해제와 대미 관계 개선이라는 성과를 얻었다. '선(先) 핵 폐기, 후(後) 보상-관계 정상화'라는 원칙에 따른 것으로 최근에는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리비아 모델'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핵무기 개발 기술을 겨우 입수한 리비아와 달리 북한은 핵무기를 상당한 수준으로 개발한 상태이기 때문에 접근법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제러미 번스타인은 "북한은 리비아나 심지어 남아공이 보유한 것보다 어마어마한 핵무기 생산설비를 갖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미국과 리비아의 협상을 중개한 로버트 조지프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NYT 인터뷰에서 "리비아와 북한의 상황은 다르다"고 같은 견해를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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