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을의 반란'…직원들 서울 도심 촛불집회 나설까

입력 2018-04-30 06:11
대한항공 '을의 반란'…직원들 서울 도심 촛불집회 나설까

직원 채팅방서 논의 활발…"땅콩·물컵 던지기 퍼포먼스도 하자"

"채증·불이익 받을까 걱정"…시민단체 "회사의 집회 채증은 불법"

(서울=연합뉴스) 김동규 기자 = 총수 일가의 오랜 '갑(甲)질'을 폭로하고 이에 반발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대한항공[003490] 직원들이 서울 도심 촛불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각종 제보·증언을 통해 총수 일가 퇴진을 압박해온 직원들이 실제로 광장에 모여 목소리를 낼지 주목된다.



30일 대한항공 직원 등에 따르면 직원들은 전날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조양호 회장 일가 퇴진 촉구 촛불집회'라는 제목의 익명 채팅방을 개설해 촛불집회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최대 수용 인원이 1천명인 이 채팅방에는 현재 850명 넘는 직원이 참여하고 있다.

이 채팅방에서는 촛불집회에서 사용할 구호, 피켓, 플래카드 등의 시안부터 노래 개사, 의상·마스크 착용 제안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논의되고 있다.

채팅방 운영자는 "회사 측의 방해가 예상된다"며 "(경찰에) 집회 신고를 마친 뒤 장소와 시간 등 자세한 사항을 공지하겠다"고 했다.

운영자는 법 테두리 안에서 집회를 강하게 열겠다며 "광화문, 국회, 국토교통부, 관세청, 청와대 인근이나 국민연금공단, 서울시청광장 등 다양한 장소를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채팅방에서는 광화문광장이 주로 거론되고 있다.

직원들은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과 조현민 전무의 '물벼락 갑질'을 풍자하는 의미로 땅콩·물컵 던지기 퍼포먼스와 매실 음료 1박스 준비하기 등 집회 관련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 매실 음료는 지난달 조 전무가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폭언하면서 뿌린 것으로 알려진 음료다.

직원들은 "휴가를 내고서라도 참석하겠다", "가족과 함께 참여하겠다"라거나 "그룹사나 협력사 직원에게도 참여를 독려하겠다"는 등 참여 의지를 보이고 있다.



대한항공 노조 등이 지원을 제안했지만, 직원들은 회사 노조는 물론 노동계·시민사회단체 등 외부 도움 없이 촛불집회를 이끌 계획이다.

이른바 '외부세력'의 지원을 받으며 정치색이 입혀질 경우 주장의 진정성이 의심받고 공격받을 빌미가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운영자는 "기존 노조와는 함께 하지 않고, 어떤 단체의 개입도 최대한 거부하겠다"며 "부족해도 우리끼리 한다"고 했다.

직원들은 회사가 집회 참석자를 색출해 인사 등 불이익을 주지 않을지 가장 우려하고 있다.

이에 촛불집회에 참석하더라도 신분 노출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후드티, 모자, 마스크, 선글라스 등 착용을 서로 권장하고 있다.

한 직원은 "우리도 휴대폰으로 회사 측이 사진·동영상 촬영하는 것을 찍어 유튜브로 실시간 송출하는 등 제보하자"고도 했다.



이 채팅방에는 지난 27일 대한항공 2개 노조가 본사 앞에서 연 '대한항공 경영정상화를 위한 촉구대회' 당시 회사 노무팀 직원이 현장을 채증하는 장면이라며 사진기를 든 직원을 찍은 사진이 올라오기도 했다.

회사 측이 집회 현장을 채증할 경우 이는 불법 소지가 짙다.

현재 공권력을 부여받은 경찰도 집회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면서 폭력 등 불법행위가 일어날 경우 제한적으로 현장 채증에 나서고 있다.

기업이 합법적으로 신고된 집회 현장을 임의로 채증하는 것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은 물론 헌법이 보장한 집회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크다는 게 시민사회단체 주장이다.

참여연대 안진걸 시민위원장은 "회사 측의 집회 채증은 위력을 행사해 합법적인 집회를 방해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며 "채증 목적도 참석자에 불이익을 주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만큼 죄질이 나쁘다. '갑을 문제' 해결을 주장하는 집회에서 회사가 또다시 갑질을 하겠다는 셈 아니냐"고 꼬집었다.

d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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