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을 뛰어넘은 소년소녀 이야기 '원더스트럭'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1977년 미국 미네소타주 한 마을. 불의의 사고로 엄마를 잃은 12살 소년 벤은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빠를 찾아 홀로 뉴욕으로 향한다. 아빠에 대한 단서가 담긴 책 '원더스트럭'을 엄마 책상 서랍 속에서 발견한 이후다.
1927년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지내던 소녀 로즈는 그곳을 벗어나고 싶어한다. 로즈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배우의 공연 기사를 본 뒤 무작정 집을 뛰쳐나와 뉴욕으로 떠난다.
다음 달 3일 개봉하는 영화 '원더스트럭'에는 50년을 사이에 두고 소년과 소녀가 등장한다. 둘은 모두 청각장애를 지녔다. 로즈는 선천적인 장애가 있고, 벤은 얼마 전 사고로 청력을 잃었다. 뉴욕으로 떠난 두 사람은 각각 자연사박물관을 찾아 그곳에 매료된다.
영화는 소년과 소녀의 발자취를 교차편집 방식으로 따라간다. 1970년대 벤과 1920년대 로즈의 여행 장면은 컬러와 흑백으로 뚜렷하게 구분한다.
특히 로즈의 뉴욕 여행길은 마치 한 편의 무성영화 같다. 귀가 들리지 않는 로즈의 시선에서 약 1시간가량 대사 없이 펼쳐진다. 대사의 공백을 메우는 건 소녀의 다양한 표정과 그 감정을 전해주는 배경음악들이다.
컬러와 흑백의 교차편집과 다큐멘터리처럼 진행되는 전개는 낯설지만, 뉴욕의 거리와 사람들, 그리고 달라진 박물관 풍경을 비교해보는 색다른 재미가 있다.
소년과 소녀 눈에 비친 박물관은 온통 신기한 것투성이다. 그중에서도 각 나라의 진기한 물건들을 모아놓은 '호기심의 방'은 둘의 인연이 싹트는 곳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둘 사이에 얽힌 인연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극 초반에는 종잡을 수 없던 둘의 관계는 후반부로 갈수록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해진다.
깜짝 놀랄만한 반전을 기대했다면 다소 맥이 빠질 수도 있다. 귀와 마음을 열고 본다면 편안한 휴식 같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시궁창 속에서도 누군가는 별을 본다". 벤의 엄마가 벽에 붙여놓은 글귀다. 엄마는 벤에게 끝내 그 뜻을 알려주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홀로 아빠를 찾아 떠난 벤은 과연 여러 역경을 딛고 그 별을 볼 수 있을까.
영화 '캐롤' '아임 낫 데어' 등 아름답고 섬세한 감성과 특유의 절제된 영상미로 사랑받는 거장 토드 헤인즈 감독의 신작이다. 지난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로즈 역 밀리센트 시몬스는 이 작품이 데뷔작인데도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준다. 실제 청각장애를 지닌 그는 최근 개봉한 공포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에도 출연했다. 벤 역의 오크스 페글리 역시 아역답지 않은 연기력을 뽐낸다. 줄리언 무어와 미셸 윌리엄스와 같은 믿고 보는 여배우들의 등장도 반갑다.
fusionjc@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