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공민왕 인식, 점차 부정적으로 변화

입력 2018-04-29 11:48
조선시대 공민왕 인식, 점차 부정적으로 변화

한국역사연구회, 고려 건국 1천100주년 학술회의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고려 건국 1천100주년을 맞아 역사학계에서 고려사를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활발한 가운데 28일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고려 건국과 경기 성립의 역사적 의의를 다룬 학술회의가 열렸다.

한국역사연구회가 주관하고 인천문화재단과 경기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한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고려와 경기 지역 역사에 대한 주제 발표 9건이 진행됐다.

조선 초기 정치사를 연구하는 이규철 한국외대 강사는 '조선시대 공민왕 인식 변화 과정' 발표에서 건국 직후에는 긍정적이던 공민왕에 대한 인식이 후기로 갈수록 부정적으로 변했다고 주장했다.

고려 제31대 임금인 공민왕(재위 1351∼1374)은 친원파를 몰아내고 신돈을 등용해 개혁정책을 펴고자 했던 인물이다. 조선 건국에 참여한 유신 중 상당수는 공민왕 대에 중앙정계에 진출했다.

이 강사는 "'고려사'는 전체적으로 공민왕을 부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조선 건국 초기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은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며 "조선은 초기에 공민왕을 이은 우왕, 창왕, 공양왕을 정식 군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민왕을 사실상 고려의 마지막 군주로 상정하고 높게 평가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조선이 정한 제도와 개선 방향은 공민왕 시기와 비교할 때가 많았고 영향도 받았다"고 덧붙였다.

이 강사는 조선 국왕과 신료가 고려 태조와 공민왕을 국가 제사 대상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거론하면서 "조선 초기에는 공민왕의 존재를 자주 떠올릴 수밖에 없었고, 태도도 복합적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공민왕에 대한 인식은 세종과 세조 대를 지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고 이 강사는 지적했다. 두 임금이 군사적으로 성공하면서 외적 침입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공민왕의 부정적인 면이 부각됐다는 것이다.

그는 "성종과 중종 대에는 공민왕을 망국 군주로 표현할 정도로 부정적 평가가 대세를 이루게 됐다"며 "공민왕 사후 100년 넘는 시간이 지나면서 평가가 악화했다"고 밝혔다.

결국 중종 대에는 공민왕이 우왕, 창왕, 공양왕과 함께 나라를 망친 국왕으로 묶였고, 현종 대에는 '혼주'(昏主·어리석은 군주)라고 일컬어진 광해군과 비교 대상이 될 정도로 평가가 나빠졌다고 이 강사는 주장했다.

학술회의에서는 이외에도 강화 천도의 외교적 배경, 근현대 개성인에게 끼친 고려 영향, 해방 직후 고려 국호론의 전개와 고려 표상 등에 관한 발표가 이뤄졌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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