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장 설치 된 '창호' 눈길 …"한지로 교류길 열자"
김진희 한지개발원 이사 "연구도 같이하고 문화제도 열었으면"
(원주=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종이는 따뜻합니다. 유리는 투명하지만 차갑고 깨지기 쉬운 반면 창호지에는 마을에서 일어나는 대소사와 희로애락이 담겨 있죠."
지난 27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판문점 '평화의 집' 내 회담장의 문이 열리자 거대한 금강산의 절경이 담긴 한 폭의 그림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평화의 집 곳곳에는 성공적 회담을 통한 한반도 평화 정착을 기원하는 다양한 미술품이 걸렸다.
하지만 한지개발원 김진희(53) 상임이사와 이선경(53) 이사의 시선은 회담장 양쪽 벽면에 꽂혔다.
남과 북의 신뢰관계가 오래 이어지길 희망하는 의미를 담은 '창호'가 설치돼 있었기 때문이다.
창호지는 다름 아닌 우리의 종이 '한지'였다.
이날 원주한지테마크에서 만난 두 사람은 "한지를 가지고 남과 북이 만나는 날도 가까워지고 있다"며 반색했다.
"한지는 질기고 강하며 때론 부드럽고 온화한 민족의 성품을 똑 닮았습니다. 우리 민족의 순결성을 상징한다고 해 백지(白紙)라 불리기도 하고, 100번의 손길을 거쳐 완성된다고 해 백지(百紙)라 불리기도 했죠."
'한지의 본고장' 원주에서 20년 넘게 한지를 연구하는 두 사람에게 있어 사라져 가는 창호지가 남북정상회담장에 등장한 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다.
매년 한지 문화제를 열며 언젠가 남북이 함께 한지 문화제를 여는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왔기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이기도 하다.
한지는 문방사우(文房四友, 종이·붓·벼루·먹) 중 하나로 불릴 만큼 우리 민족 일상과 문화에 밀접해 발전한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이다.
생활에 필요한 물품이 충분하지 않았던 시절, 지금은 그 흔한 플라스틱이나 유리가 없어 나무가 귀하던 옛날에 선조들은 종이를 이용해 필요한 물품을 만들어 썼다.
한지는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함을 가지고 있으며 마치 종이 자체가 숨을 쉬는 것처럼 여름에는 더위를 막고, 겨울에는 추위를 막았다.
닥나무를 원료로 만들어 '닥종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북한에서는 '참종이' 또는 '참지'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평양에는 9개의 한지 공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두 이사가 가지고 있는 북한 종이는 중국을 통해 들어온 것이나 북에 다녀온 사람들에게 받은 샘플 정도가 전부다.
이를 가지고 종이의 질이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없으나 북에서도 닥나무를 가지고 한지를 생산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실제 북방에서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종이에 두껍게 옻칠을 하고, 솜도 넣어 방한복으로 애용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
창호도 남쪽에서는 사라져 가는 문화지만, 북에서는 어딘가 그대로 남아 있지 않을까 미루어 짐작하는 이유다.
북한은 인민예술가를 육성하고 우대하는 정책을 펼쳐 서예, 미술, 공예 분야에 인재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남북이 우리 종이를 어떻게 살려갈지 고민하고 함께 문화제를 여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에 이 같은 바람을 수차례 전하기도 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재 수입의존도가 높은 닥나무를 북에 심고, 종이공장을 만드는 일도 꿈꾸고 있다.
"종이는 정치적 이념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남북교류협력시대에 가장 쉽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문화가 되지 않을까요?"
남북이 함께 한지 문화를 이어가길 꿈꾸는 두 사람이 닥종이 인형을 들고 밝게 웃었다.
conany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