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군사분계선 만남부터 사전 환담까지 대화록
문 대통령 "실패 거울삼아 잘할 것"…김정은 "좋은 앞날 확신"
(판문점=연합뉴스) 공동취재단·한지훈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나눈 비공개 대화가 공개됐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9시30분 판문점 군사분계선(MDL)에서의 첫 대화를 시작으로 공식 환영식, 정상회담에 앞선 환담 등에서 다양한 주제로 대화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열린 환담에서 김 위원장에게 "오늘 판문점을 시작으로 평양과 서울, 제주도, 백두산으로 만남이 이어졌으면 좋겠다"며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잘할 것이다. 속도를 계속 유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이제 자주 만나자"며 "마음을 단단히, 굳게 먹고 다시 원점으로 오는 일이 없어야겠다. 우리도 잘하겠다"고 화답했다.
다음은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의 판문점 자유의집 브리핑을 바탕으로 한 두 정상의 대화 내용이다.
◇ 군사분계선에서
▲ 문 대통령 = (김 위원장과 악수하며) 김 위원장은 남측으로 오시는데 나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겠느냐.
▲ 김 위원장 = (남측으로 넘어온 뒤 문 대통령의 손을 이끌며) 그럼 지금 넘어가 볼까요.
◇ 공식 환영식장으로 이동하며
▲ 문 대통령 = 외국 사람들도 우리 전통 의장대를 좋아한다. 그런데 오늘 보여드린 전통 의장대는 약식이라 아쉽다. 청와대에 오시면 훨씬 좋은 장면을 보여드릴 수 있다.
▲ 김 위원장 = 아 그런가요? 대통령께서 초청해주시면 언제라도 청와대에 가겠다.
◇ 의장대 사열을 마친 후
▲ 김 위원장 = 오늘 이 자리에 왔다가 사열을 끝내고 돌아가야 하는 분들이 있다.
▲ 문 대통령 = 그럼 가시기 전에 남북 공식 수행원 모두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으면 좋겠다.
◇ 평화의집 로비에서 민정기 화백의 '북한산' 그림을 보며
▲ 김 위원장 = 이것은 어떤 기법으로 그린 것이냐.
▲ 문 대통령 = 서양화인데 우리 동양적 기법으로 그린 것이다.
◇ 평화의집 1층 환담장에서
▲ 문 대통령 = (김중만 작가의 작품 '천년의 동행, 그 시작'을 소개하며) 이 작품은 세종대왕이 만드신 훈민정음의 글씨를 작업한 것이다. 여기 보면 '서로 사맛디'는 우리 말로 서로 통한다는 뜻이고 글자에 'ㅁ'이 있다. '맹가노니'는 만들다라는 뜻이다. 거기에 'ㄱ'을 특별히 표시했다. 서로 통하게 만든다는 뜻이고, 사맛디의 'ㅁ'은 문재인의 'ㅁ', 맹가노니의 'ㄱ'은 김 위원장의 'ㄱ'이다.
▲ 김 위원장 = 세부에까지 마음을 썼다.
▲ 문 대통령 =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느냐.
▲ 김 위원장 = 새벽에 차를 이용해 개성을 거쳐서 왔다. 대통령께서도 아침에 일찍 출발하셨겠다.
▲ 문 대통령 = 저는 불과 52㎞ 떨어져 있어서 한 시간 정도 걸렸다.
▲ 김 위원장 = 대통령께서 우리 때문에 NSC(국가안보회의) 참석하시느라 새벽잠 많이 설쳤다는데 새벽에 일어나는 게 습관 되셨겠다.
▲ 문 대통령 = 김 위원장이 특사단 갔을 때 선제적으로 말씀해주셔서 앞으로 발 뻗고 자겠다.
▲ 김 위원장 = 대통령께서 새벽잠을 설치지 않도록 내가 확인하겠다. 불과 200m를 오면서 '왜 이리 멀어 보였을까. 또 왜 이리 어려웠을까' 생각했다. 원래 평양에서 대통령을 만날 줄 알았는데 여기서 만난 게 더 잘 됐다. 대결의 상징인 장소에서 많은 사람이 기대를 갖고 보고 있다. 오면서 보니 실향민과 탈북자, 연평도 주민 등 언제 북한군의 포격이 날아오지 않을까 불안해하던 분들도 우리의 오늘 만남에 기대를 갖고 있는 걸 봤다. 이 기회를 소중히 여겨 남북 사이에 상처가 치유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분단선이 높지 않은데 많은 사람이 밟고 지나다 보면 없어지지 않겠나.
▲ 문 대통령 = 청와대에서 오는데 도로변에서 많은 주민이 환송했다. 그만큼 우리 만남에 기대가 크다. 대성동 주민도 나와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우리 어깨가 무겁다. 오늘 판문점을 시작으로 평양과 서울, 제주도, 백두산으로 만남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환담장에 걸린 박대성 화백의 '장백폭포'와 '일출봉' 그림을 가리키며) 왼쪽에 장백폭포가 있고 오른쪽에 일출봉 그림이 있다.
▲ 김 위원장 = 대통령께서 백두산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아는 것 같다.
▲ 문 대통령 = 나는 백두산에 안 가봤다. 중국으로 가는 분들이 많더라. 나는 북측을 통해 백두산에 꼭 가보고 싶다.
▲ 김 위원장 = 대통령께서 오시면 솔직히 걱정스러운 게 우리 교통이 불비해서 불편을 드릴 것 같다. 평창올림픽에 갔다 온 분이 말하는데, 평창 고속열차가 다 좋다고 하더라. 남측의 이런 환경에 있다가 북에 오면 참 민망스러울 수 있겠다. 우리도 준비해서 대통령께서 오시면 편히 모실 수 있게 하겠다.
▲ 문 대통령 = 앞으로 북측과 철도가 연결되면 남북이 모두 고속철도를 이용할 수 있다. 이런 것이 6·15 , 10·4 합의서에 담겼는데 10년 세월에 그리 실천을 하지 못했다. 남북관계가 완전히 달라져서 그 맥이 끊어진 것이 한스럽다. 김 위원장의 큰 용단으로 10년간 끊어진 혈맥을 오늘 다시 이었다.
▲ 김 위원장 = 기대가 큰 만큼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큰 합의를 해놓고 10년 이상 실천하지 못했다. 오늘 만남도 그 결과가 제대로 되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짧게 걸어오며 정말 11년이나 걸렸나 생각했다. 우리가 11년간 못한 것을 100여 일 만에 줄기차게 달려왔다. 굳은 의지로 함께 손잡고 가면 지금보다 못할 수 있겠나 했다. 대통령을 여기서 만나면 불편하지 않을까 했는데 친서와 특사로 사전에 대화해보니 마음이 편했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중요하다.
▲ 문 대통령 = (김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을 가리키며) 김 부부장은 남쪽에선 아주 스타가 됐다. 오늘의 주인공은 김 위원장과 나다.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잘할 것이다. 과거에는 정권 중간이나 말에 늦게 합의가 이뤄져서 정권이 바뀌면 실천이 이뤄지지 않았다, 제가 시작한 지 1년 차다. 제 임기 내에 김 위원장 신년사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달려온 속도를 계속 유지했으면 좋겠다.
▲ 김 위원장 = 김여정 부부장 부서에서 '만리마 속도전'이라는 말을 만들었는데, 남과 북의 통일 속도로 삼자.
▲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 살얼음판 위를 걸을 때 빠지지 않으려면 속도를 늦춰서는 안 된다.
▲ 문 대통령 = 과거를 돌아봤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다.
▲ 김 위원장 = 이제 자주 만나자. 이제 마음을 단단히, 굳게 먹고 다시 원점으로 오는 일이 없어야겠다. 기대에 부응해 좋은 세상을 만들어보자. 앞으로 우리도 잘하겠다.
▲ 문 대통령 = 북측에 큰 사고가 있었다고 들었다. 수습하느라 고생이 많았겠다. 김 위원장이 직접 나서 병원에 들러 위로하고, 특별열차까지 배려했다고 들었다.
▲ 김 위원장 = 대결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자고 해서 왔고, 우리 사이에 걸리는 문제에 대해 대통령과 무릎을 맞대고 풀려고 왔다. 꼭 좋은 앞날이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 문 대통령 =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인이다. 그러면서도 세계와 함께 가는 우리 민족이 돼야 한다. 우리 힘으로 이끌고 주변국이 따라오게 해야 한다.
hanjh@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