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단축] ⑧세계는 이미 '워라밸' 천국…지원책 풍성

입력 2018-04-30 07:01
수정 2018-04-30 07:10
[근로시간 단축] ⑧세계는 이미 '워라밸' 천국…지원책 풍성



독일 '저녁이 있는 삶' 최강국…금속노조 '주당 28시간' 쟁취

'야근 지옥' 일본도 실제로는 워라밸 돌풍…고령화 대비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김보경 기자 = 한국이 이제야 주당 52시간 일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면 세계 주요국은 이미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 천국으로 속속 진입하고 있다.

독일에선 올해 법정 근로시간을 28시간으로 파격적으로 단축하며 워라밸 최강국임을 다시 한 번 과시하는 등 유럽에선 일찌감치 근로자들이 저녁이 있는 삶을 되찾고 있다.



한국처럼 '야근 지옥'으로 악명이 높던 일본도 알고 보면 정부 차원에서 근로시간 단축 지원금, 휴가 적립제 등을 도입해 구시대적 직장 문화를 깨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무엇보다 근로시간 단축이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선 유연한 제도 설계가 전제돼야 하는 만큼 선두 주자인 유럽 선진국들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EU)은 이미 1993년 연장 근무를 포함한 주당 노동시간을 최장 48시간으로 제한했다는 점에서 롤모델로 꼽힌다.

특히 EU 회원국들은 국가별로 이보다 짧게 근로시간 기준을 정하고 있고, 그중에서도 독일과 프랑스가 각각 1995년, 2000년부터 주 35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투톱'이다.

유럽 내에서 상대적으로 노동시간이 긴 남유럽의 포르투갈과 그리스도 1990년대 말부터 주당 40∼42시간 근로 시간제를 정착시켰다.

이러한 제도적 기반에 힘입어 실제 근로시간도 크게 줄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독일의 연간 노동시간은 1천363시간으로 회원국 중 가장 적다.



프랑스도 1천472시간으로 OECD 평균보다 300시간 가까이 적다. 2천69시간인 한국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여기에다 올해 초 독일 금속노조가 35시간에서 28시간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노동 혁명을 이뤄내면서 세계 노동시장의 선구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려 있다.

아시아에서는 한국 못지않게 장시간 근로로 악명이 높은 일본의 사례를 살펴볼 만하다.

실제로는 일본의 연평균 근로시간이 1천713시간으로 한국보다 적다.

고도성장에 진입한 195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장시간 근로를 고수해 경제 호황을 일궜으나 정작 근로자의 워라밸은 형편없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이런 각성에 따라 1988년 법정 근로시간을 46시간으로 단축한 것을 시작으로 1994년에는 40시간까지 끌어내렸다.

국가 경제로 봐도 개인 여가가 늘어나 소비가 확대되면 내수 진작을 통한 경기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는 시각이 퍼졌다.

자칫 근로시간 단축으로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우려도 미리 법으로 절충했다. 시간당 인건비가 치솟는 것을 완화하고자 1994년부터 유연 근무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것이다.

이에 따라 변형 근로 시간제, 재량 근로 시간제 등을 확대했으며, 초과 근로시간에도 상한을 둬 불필요한 야근을 사전에 차단하도록 했다.

파격적 지원책도 속속 도입했다. 근로시간을 단축한 중소기업에 지원금을 주고, 봉사 활동을 한 근로자에게 유급 휴가를 적용해주는 등 고령화 시대에 맞는 직장 문화로 차츰 옮겨가고 있다.

경제 대국 미국에서는 연평균 근로시간이 1천783시간으로 OECD 회원 35개국 평균(1천764시간)을 살짝 웃돈다.

하지만 한국(2천69시간)보다는 훨씬 적은 것이다.

미국은 1930년대 대공황 암흑기를 지나 1938년 공정근로기준법(FLSA)을 제정하면서 주당 40시간 근무를 못 박았다.

민간 기업에서는 단계적으로 근무 시간을 줄이기 시작해 1940년 40시간까지 끌어내렸다.

특히 초과 근로를 하면 임금 1.5배 또는 보상 휴무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기도 한다.

주 5일 근무도 대체로 정착됐다. 정부, 학교 등의 공무원은 법으로 정했고, 민간 기업은 노사 단체 협약에 따라 자율적으로 시행 중이다.

1990년대부터 유연 근무제도 다각도로 시도 중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것은 '전국 원격근무 주간'(National Telework Week)이다.

2010년 도입된 원격근무 진흥법에 따라 기업, 정부, 공공기관의 공무원은 직원이 최소 1일 이상 자택 등 사무실이 아닌 곳에서 자유롭게 근무하도록 장려하는 제도다.



이를 통해 불필요한 출퇴근 시간을 줄이고 근무 효율을 올린다는 점에서 기업과 근로자가 윈윈(win-win)하는 효과를 내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스웨덴은 볼보 본사가 있는 고센버그시에서 지난 2년간 시범 시행했던 하루 6시간 근무제를 입법하지 않기로 최근 결정했다. 추가 근로수당 등 고비용 문제가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시 정부는 고센버그 요양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들에게 동일 임금을 주며 근무 시간을 2시간 줄이도록 했지만 추가로 간호사 17명을 고용해야 하는 등 비용이 커지자 실험을 중단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근로시간 단축제가 실보다는 득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 기업 전문 월간지 엔터프리너는 근로시간 단축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진다며 "직원들은 시간 배분을 더욱 효율적으로 할 수 있고, 일 집중도도 높아진다. 또 장시간 근무에 따른 업무 오류를 줄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고 전했다.

viv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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