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영 작가 "4·3의 재기억·진혼, 문학이 감당해야"

입력 2018-04-27 11:38
현기영 작가 "4·3의 재기억·진혼, 문학이 감당해야"

2018 전국문학인 제주대회서 강조…"독자 끌기 위한 정교한 창작 필요"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소설가 현기영은 27일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4·3의 원혼을 문학으로써 위로하고, 작가는 진혼굿을 주재하는 무당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설 '순이삼촌'을 써 4·3을 전국에 알린 현 작가는 이날 제주4·3항쟁 70주년을 맞아 한화리조트 제주에서 열린 '2018 전국문학인 제주대회' 기조강연을 통해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변변한 무기도 없이 억제할 수 없는 분노만 가지고 봉기한 200명 혹은 300명의 젊은이들을 무찌르기 위해 무고한 양민 약 3만명을 소탕한 것이 바로 4·3사건의 골자"라며 역대 독재정권들은 피해당사자들의 맺힌 한을 해원해 주기는커녕 입도 벙긋하지 못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민중의 기억이 철저히 부정되고, 그 기억에 대한 사소한 언급도 용납되지 않은 상황에서 어렵게 4·3문학이 탄생했다고 말했다.

현 작가는 "왜곡된 공식 기억을 부인하고, 민중의 망가진 집단 기억을 복원해 내는 작업이 기억운동인데, 그 운동의 선두에 문학인들이 포진했다"며 "가슴을 짓누르는 두려움 속에 진행된 4·3문학은 타버린 마을과 죽은 자들을 되살리는 문학이었다"고 했다.



그는 "4·3의 참사 속에 희생된 3만 원혼들이 아직도 어둠에 갇힌 채 우리를 향해 애원의 손을 흔들고 있다"며 "민중 수난의 말살된 기억을 되살리고 그것이 다시는 망각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재기억시키는 일을 문학이 감당해 달라고 애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향락적인 소비문화와 범람하는 엔터테인먼트 속에 4·3문학이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고민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현 작가는 "문학의 기억운동이 소비향락주의 사회에서 설득력을 가지려면 정교한 창작 전략이 있어야 한다"며 "상투적인 스토리텔링만으로는 안 되고 창의적인 형식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유대인 수난의 참혹한 역사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코미디를 도입한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노예문제를 창의적인 형식미를 통해 표현한 소설 '빌러비드'와 같은 작품을 예를 들며 "정통 리얼리즘만 고집할 게 아니라 환상·코미디도 아우를 수 있고 모더니즘의 방법론도 차용하는 등 새로운 리얼리즘도 찾아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동아시아의 문학적 항쟁과 연대'를 주제로 한 국제 문학 심포지엄에서는 베트남 소설가 바오 닌의 '평화를 위한 전쟁문학', 대만 시인 리민용 '대만 국가 재건과 사회 개혁의 길 위에서' 등 주제발표가 이어졌다.

28일에는 '역사의 상처, 문학의 치유'를 이야기하는 세미나, '잊는다는 것, 잃는다는 것- 현기영의 4·3문학'을 다루는 문학토크가 이어지고 소설가 한림화는 기조 발표를 통해 '제주4.3사건 진행시 제주여성에 가해진 성폭력 사례'를 조명한다.

29일에는 기념식수 식재와 4·3문학기행 등이 진행된다.

b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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