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포연 자욱했던 연평도에 한반도기 물결
한반도 화약고 이미지 벗고 평화협력지대로 변화 모색
어민들 '남북정상회담 서해 공동어로구역 설정 계기 되길'
(연평도=연합뉴스) 윤태현 기자 = 서해 5도 중 북한과 가장 가까운 섬 연평도.
남북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26일 새벽 연평도 당섬선착장에서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온한 일상이 시작됐다.
이달 초 봄철 조업을 시작한 어민들은 새벽부터 새우와 꽃게잡이에 나서기 위해 그물과 어구를 손질하며 조업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어선 깃대에는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어민들의 기대를 나타내듯 '서해 5도 한반도기'가 태극기와 함께 나란히 펄럭였다.
서해 5도 한반도기는 기존 한반도기에 백령·대청·소청·연평·우도 등 서해 5도를 그려 넣은 것이 특징이다.
서해 5도 어민단체들은 지난달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가 이뤄지자 남북화해와 서해 평화를 염원하는 의미로 한반도기를 어선에 달고 조업하고 있다.
연평도 어민들은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항구적인 평화가 연평도에 정착하기를 고대한다.
분단 이전에 아버지·할아버지들이 그랬던 것처럼 연평도의 북쪽 바다에서도 자유롭게 조업할 수 있는 날이 오기만을 바란다.
특히 남북정상회담이 NLL 해역을 남북공동어로구역으로 지정하고 '바다의 개성공단'으로 불리는 '남북 공동 파시(波市·바다 위 생선시장)'가 열리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
박태원 연평도 어촌계장은 "중국어선들이 '황금어장'인 NLL 해역에서 우리 수산물을 긁어가는 데 남북 군사 대치 상황 때문에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며 "NLL 해역을 남북공동어로로 설정한다면 서해는 냉전의 현장이 아니라 평화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금은 평화를 염원하는 한반도기의 물결이 부둣가를 수놓고 있지만 연평도는 남북 분단의 쓰라린 현실을 온몸으로 겪은 섬이기도 하다.
1999년 서해교전, 2002년 연평해전이 삶의 터전인 섬 앞바다에서 발생했고, 2010년에는 연평도 포격 사건까지 터졌다.
연평도 포격 사건 땐 주민 대다수가 인천 찜질방과 김포 미분양 아파트, 연평초등학교 내 임시주택을 전전하며 떠돌이 피란민 생활을 해야 했다.
이 때문에 일부 주민은 남북관계 변화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어민 A(58)씨는 "지난 2번의 남북정상회담이 있었지만, 평화는 오지 않았다"며 "이번 정상회담으로 조속한 한반도의 평화를 기대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평화의 상징이 될 줄 알았던 개성공단은 현재 남북갈등의 상징이 됐다. 군사 도발을 중단하는 약속부터 차근차근히 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섬 북단 망향전망대에 오르니 북한 갑도·장재도·석도 등 섬들 사이로 황해남도 해안선이 한눈에 들어왔다.
북한 주민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장재도와 대수압도의 해안포 문들이 닫힌 모습을 망원경으로 관측할 수 있었다.
그동안 북한은 핵실험 등 도발을 할 때마다 해안포 문을 열고 연평도로 포를 쏠 태세를 취하며 대립의 각을 세웠다. 반대로 남북 고위급 접촉 등으로 긴장이 완화하면 포문을 닫았다.
남북 해빙 무드 덕분인지 평소 같으면 연평도와 황해남도 사이 NLL 바다를 새까맣게 뒤덮던 중국어선도 자취를 감췄다.
예년에는 선단(船團)을 이룬 수백척의 중국어선이 남북 대치 상황을 악용해 NLL을 넘나들며 조업했지만 이날은 5척만 바다에 떠 있었다.
어민 사이에서는 북한 당국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어선의 불법조업 단속을 강화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해경 관계자는 "자국 불법조업에 손을 놓다시피 한 중국 당국이 최근 자국 어선의 불법조업을 강력하게 단속하는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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