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건너 어릴적 집터 보이는데 70년을 못갔네…"

입력 2018-04-25 14:13
"강 건너 어릴적 집터 보이는데 70년을 못갔네…"

88세 실향민 김종원씨 "죽기 전 부모·형제 생사라도 알았으면"

(파주=연합뉴스) 노승혁 기자 =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강 건너로 옛날 집터가 빤히 보이는데 70년 가까이 가보질 못하네…"



남북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25일 경기도 파주시 보훈회관에서 만난 김종원(88세.대한민국 6·25 참전유공자회 파주시지회장)씨는 "고향 땅이 코 앞인데 가볼 수도 없고, 부모님의 생사도 모른 채 69년째 시간만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의 고향은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황해북도 개풍군 임한면 하조광리다. 파주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임진강만 건너면 되는 동네가 김 회장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면 이름 역시 임진강과 한강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딴 것이다. 남쪽은 한강을 건너 김포반도를 바라보고, 동쪽은 임진강을 건너 파주를 바라본다.

인삼과 배추가 많이 나서 6·25전쟁 이전에는 인삼과 배추를 서울로 많이 반출했다고 한다.

김 회장의 집은 당시 개성에서 인삼농사를 제일 크게 지었다고 했다. 남동생 2명과 여동생 2명도 있었다.

그는 19살이던 1950년 4월 예비 전력 확보 차원에서 설립된 '청년방위대'에 소속됐다가 6·25전쟁이 발발하자 대구에서 간단한 군사교육만 받고 전쟁에 차출돼, 강원도 화천에서 전쟁을 치렀다.

'간단한 군사교육만 받으면 된다'는 군인 말을 믿었는데 그게 70년의 생이별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느냐고 눈시울을 적셨다.

김 회장은 가족사진 한 장 챙기지 못했다.

화천에서 군 생활을 하다 경기도 연천까지 근무지를 옮겼다.

당시 김포와 파주 장단면에 외삼촌과 친척이 거주해 있던 상황이었고, 이때 북측에서 한강을 건너 남한으로 온 남동생을 만났다.

"부모님을 왜 모시고 나오지 않았나"는 말에 동생은 "아버지가 수확한 인삼을 처분도 못 했고, 형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계셔 혼자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답했다.

이후 휴전이 되면서 김 회장이 살던 동네는 북한 영역이 돼 버렸다. 백방으로 부모님과 동생들의 생사를 알아봤지만, 모두 '함경도로 쫓겨갔다'는 얘기만 전해 들었다.

이런 소식을 들은 김 회장은 30여 년이 넘도록 눈물로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8년의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한 김 회장은 고향과 가장 가까운 파주시 금촌동에 정착했다.

외삼촌도 인근에 거주해 있고, 고향이 너무 그리워 향수를 달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유일한 혈육인 남동생은 경기도 이천에 거주하고 있다.



김 회장은 "2000년도 초까지는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강 건너 옛집의 흔적이 보이더니 시간이 흐를수록 건물이 헐리고 농경지로 바뀌었다"면서 허탈해했다.

남북정상회담에 어떤 기대가 있느냐는 질문에 "실향민이 자유롭게 고향에 갈 수 있는 날이 오면 얼마나 좋겠냐"고 말했다.

김 회장의 소망은 하나다. 남북정상회담으로 남북 간 왕래가 이뤄져 먼발치에서 바라보던 고향 땅에 가보는 것이다.

그는 "죽기 전에 부모님과 동생들의 생사라도 알고 싶다"면서 "이마저도 힘들면 옛 집터 인근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묘가 있는데 꼭 찾아 성묘라도 하고 싶다"며 60년 넘게 가슴에 담아온 소망을 전했다.

n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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