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실향민 1세대 소원이라면 고향 한번 가보고 눈 감는 거죠"

입력 2018-04-25 09:55
수정 2018-07-03 10:55
[르포] "실향민 1세대 소원이라면 고향 한번 가보고 눈 감는 거죠"

남북정상회담 앞둔 속초 아바이마을…덤덤한 분위기 속 기대감

(속초=연합뉴스) 이종건 기자 = "실향민 바람이 모두 이뤄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남북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25일 강원도 속초시 아바이마을에서 만난 한 실향민은 오랜 기다림에 익숙해진 듯 무덤덤한 표정이었으나 그래도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남북한 사이에 일이 있을 때마다 실향민들이 거론되고 있으나 그동안 이뤄진 것은 몇 번의 상봉 이외에 다른 것이 없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나타낸 뒤 "이번에야말로 모든 바람이 이뤄졌으면 하는 희망 섞인 성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상회담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현재로서는 지켜보는 수밖에 없지 않으냐"는 답답함과 희망이 섞인 심경도 드러냈다.

우리나라 대표적 실향민 촌으로 알려진 속초시 청호동 아바이마을은 남북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이 날도 다소 덤덤한 분위기였다.

노인정에 나온 어르신들에게서도 평소와 다른 변화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남북정상회담에 어떤 기대가 있느냐는 질문에 한 어르신은 "실향민이 자유롭게 고향에 갈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말했다.



김모(88)씨는 "모처럼 마련된 정상회담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길 바란다"는 60년 넘게 가슴에 담아온 소망을 전했다.

함경남도 출신은 그는 "1·4후퇴 때 북한에 어머니와 남동생을 남겨놓고 아버지와 단둘이 피난해 경상도까지 내려갔다가 고향에 조금이라도 빨리 돌아가려고 속초까지 올라와 아바이마을에 정착하게 됐다"며 "북에 두고 온 어머니와 동생이 모두 사망한 것으로 몇 년 전에 확인해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접었다"고 말했다.

"피난 당시 어머니와 남동생이 함께 올 수 있었으나 못 나왔다"며 "다만 생사를 모르는 조카 소식이 궁금하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대부분 지척에 있는 함경도가 고향인 아바이마을 실향민 중에는 북한에 두고 온 친인척들을 그리워하는 분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아바이마을 실향민들 중에서는 이산가족 상봉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분들이 여전히 많다.

월남한 가족이나 친인척이 남한에 살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북한에 사는 혈육들이 피해를 보지 않을까하는 걱정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아바이마을 실향민들은 한동안 이산가족 상봉신청 자체를 하지 않아 상봉대상자에서 제외되는 경우도 있었다.

다행히도 이런 사정을 파악한 정부와 적십자사가 적극적으로 대처한 결과 최근에는 상봉신청을 한 실향민들이 늘어나고 2010년 10월엔 아바이마을에서 첫 이산가족 상봉자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아바이마을 실향민 수가 줄어들고 마을 모습도 변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현재 아바이마을에 사는 실향민 1세대는 대략 100여명이다.

이 가운데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하거니 병석에 있는 어르신을 제외하면 대외활동을 할 수 있는 어르신은 50∼60여 명에 불과하다.

마을 모습도 관광지화하면서 슬레이트 지붕의 판잣집이 있던 곳에는 현대식 건물의 식당과 기념품 판매점이 들어서고 고층 아파트까지 주변에 신축되면서 실향민촌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김진국(78) 청호동노인회장은 "실향민 1세대들은 대부분 세상을 뜨고 이제는 몇 분 살아있지 않다"며 "실향민 1세대에게 소원이 있다면 고향에 한번 가보고 눈을 감는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함경북도 북청이 고향으로 12살 때 월남한 그는 "이번 회담을 통해 실향민들에게 희소식이 전해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mom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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