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D-2] '종전선언' 주목하는 6·25 참전 노병 <터키>
'6·25 격전 주인공' 터키군 참전용사 인터뷰 "화해·통일로 더 강한 한국 되길"
"전쟁에 긍휼은 없다…쌓인 시신 수습 못하고 불태워"
"한국서 좋은 소식 전해지면 그 날은 우리에게 명절 같을 것"
(이스탄불=연합뉴스) 하채림 특파원 = 6·25전쟁의 격전지에서 사선을 넘나든 두 터키 노병은 한국이 통일을 성취해 더욱 강력한 나라로 우뚝서기를 한마음으로 열렬히 기원했다.
남북정상회담을 사흘 앞두고 24일(현지시간) 참전용사협회 이스탄불지부에서 연합뉴스 취재진과 만난 6·25 참전용사 메흐메트 아리프 보란(88)씨와 메흐메트 지야 외즈튀르크(89)는 전쟁 후 폐허에서 일어선 한국의 발전상을 말하며 마치 모국의 일인양 자랑스러움이 넘쳤다.
외즈튀르크씨는 "한국의 발전을 보면 67년 전 내가 한국을 위해 싸운 것이 정말로 가치 있는 일이었다는 생각에 참으로 뿌듯하다"며 눈을 반짝였다.
그는 1950년 11월 이스탄불을 떠나 다음달 부산에 도착했고 1년간 '군우리 전투'(당시 평안북도 개천군) 등에서 싸웠다.
1952년 4월에 이즈미르를 출발한 보란씨는 '네바다(베가스) 전초 전투'를 겪으며 2년간 복무했다.
군우리 전투와 네바다 전초 전투 모두 6·25전쟁사에서 손꼽히는 격전·사투로, 미군과 터키군이 무수한 피를 흘렸다.
두 노병은 "아직도 어제 일 같다"며 참혹한 전장과 고통받는 한국인의 모습을 기억했다.
보란씨는 "우리 부대는 소(小)베가스를 사수해야 했는데, 사상자가 너무 많아 시신을 밟으며 싸웠다"면서 "전투가 끝나고서는 미군이 전염병을 막아야 한다며 시신을 다 태워 전우의 시신을 수습하지도 못했다"고 돌아봤다.
외즈튀르크씨는 길가에 방치된, 시신인지 부상자인지 모를 사람들과 먹을거리를 얻으려 부대로 몰려들던 주민의 모습을 떠올리며 "민중의 참담한 모습에 내 마음이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아팠다"고 기억했다.
터키군은 1950년부터 1953년 사이 4차에 걸쳐 2만2천6명을 6·25전쟁에 파병했다. 휴전 이전 조직돼 직후 도착한 4차 파병 인원을 제외하면 1만6천312명이다. 1∼4차 파병 인원 2만2천여 명 가운데 724명이 전사하고 166명이 실종됐다.
파병 규모로는 유엔군 가운데 네번째고, 전사자수는 두번째다.
두 참전용사는 북한·중공군의 총칼에 숱한 전우를 잃었으면서도 최근 한반도 주변의 정세 변화에 관한 불신과 우려보다는 환영과 기대를 드러냈다.
서로에게 총구를 겨눈 남·북한이 화해할 수 있을 것 같으냐는 질문에 보란씨는 "적군과 화해라, 이 얼마나 꿈같은 말이냐"면서 "그러나 남·북한은 형제라 가능하다"고 말했다.
신뢰를 형성하기에 동족상잔의 아픔이 크다는 설명에 그는 "전쟁은 원래 긍휼이 없는 법"이라며, "내가 먼저 쏘지 않으면 내 아버지라도 나를 쏠 수 있는 것이 전쟁"이라고 답변했다.
두 사람은 한국이 뜻하는 바대로 통일을 이뤄 더욱 강력한 국가로 도약하기를 소망했다.
보란씨는 "남·북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서 좋은 소식이 날아온다면 우리 참전용사들에게 그날은 명절 같을 것"이라고 덕담했다.
외즈튀르크씨는 "적어도 우리 둘은 한반도 평화통일 응원군이라고 아주 크게 써달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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