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D-1] 한반도로 뛰어드는 4强…겉으론 '환영' 속으론 '수싸움'

입력 2018-04-26 13:00
수정 2018-04-26 13:10
[정상회담 D-1] 한반도로 뛰어드는 4强…겉으론 '환영' 속으론 '수싸움'



미, 북미회담 '길잡이' 역할에 촉각…'완전 비핵화' 합의 여부에 주목

중, 남북미 직접대화 흐름에 예민…종전선언·평화체제 논의 '역할론'

러, '6자회담 틀' 강조하며 개입 시도…일, 북일대화 재개 전력투구

(서울=연합뉴스) 박인영 기자 =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을 향한 첫 관문인 남북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주변 4강의 표정이 복잡미묘해보인다.

겉으로는 한반도 비핵화 달성과 평화정착을 지향하는 이번 정상회담을 적극 지지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면서도 급변하는 정세 흐름 속에서 저마다 주도권을 확보하고 실익을 극대화하려는 '셈법'이 근본적으로 다른 탓이다.

특히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을 동반하는 평화체제 구축은 동북아 역내의 '힘의 질서'를 크게 뒤바꿔놓을 수도 있는 외교적 대사건이라는 점에서 각국의 수(數)싸움이 분주할 수 밖에 없다는게 외교가의 시각이다.

이에 따라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을 무대로 열릴 남북 정상회담이 격랑 속으로 빨려들어갈 동북아 외교전의 서막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미국, 북미회담 '길잡이'로서 주목…'완전 비핵화' 합의에 촉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이번 남북정상회담 결과가 5월 말 또는 6월 초로 예상되는 북미정상회담의 성패를 좌우하게 될 것으로 보고 예민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의 의제가 사실상 '중첩'되는 점을 감안하면 남북 정상간에 어떤 수준의 합의가 나오느냐가 북미정상회담의 분위기는 물론이고 결과까지도 영향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목표는 한마디로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다. 더 정확히 말해 미국 본토에 대한 최대의 안보위협 요인인 북한의 핵과 그 운반체인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프로그램을 확실히 폐기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보인다면 관계정상화와 종전선언, 평화협정 체결 등의 반대급부와 보상을 제공할 시나리오가 예상된다.

다만 북미간의 협상은 정상간에 일괄타결을 시도하되, 이행과정을 최대한 '압축'시키겠다는게 미국의 전략이다. 북한의 합의 파기가 되풀이됐던 과거의 전철을 되밟지 않겠다는 의도에서다.

아직 북미 양국이 구상 중인 '빅딜'의 밑그림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달 초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로 평양을 방문한 국무장관 지명자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 큰 틀의 '비핵화 로드맵'에 합의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달아 긍정적 메시지를 쏟아내며 '외교적 대업'에 대한 자신감을 과시하고 있는 것은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북한이 지난 20일(현지시간) 핵실험·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과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등을 내용으로 하는 '선제 조치'를 발표한 것 역시 양측간 물밑 조율 작업의 결과물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흐름을 타고 27일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비핵화와 관련한 의미있는 합의가 도출될 가능성이 크고, 이는 본(本)무대인 북미 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는 결정적 초석이 될 것이라는게 미국의 기대다.

주목할 점은 미국이 남북, 북미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한국과의 긴밀한 공조를 중시하고 있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다음달 중순 미국을 방문해 한미 정상회담을 갖는 것은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양국 정상의 '사전 조율'이라는 측면에서 크게 주목된다.

◇ 중국, 남북미 직접대화 흐름서 '역할론' 강조…美독주 견제



북한과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순망치한'(脣亡齒寒)으로 묘사되는 특수 관계를 자랑하던 중국은 최근 남북미가 주도하는 한반도 대화흐름에서 '외교적 소외감'을 느껴왔다.

특히 과거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북핵 협상을 주도해온 중국으로서는 남북, 북미 정상이 직접 대화를 통해 비핵화는 물론이고 평화체제까지 논의하자 다급함 속에서 대화 흐름에 직접 개입할 명분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여기에는 한반도의 운명과 미래를 좌우하는 논의에서 제대로 역할을 해내지 못할 경우 역내 질서의 주도권을 고스란히 미국에 넘겨줄 수 있다는 우려감이 팽배해 보인다.

시진핑 2기를 맞아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정책을 통해 아시아 전체에 걸쳐 영향력을 확장해가려는 중국으로서는 동북아 질서를 재편할 한반도 평화 논의에서 더 늦기 전에 미국의 독주 구도를 견제해야할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이 때문에 중국은 그동안 남북 정상회담을 환영하면서도 기회가 날 때마다 자국의 역할론을 강조하며 강한 개입 의지를 보여왔다.

왕이(王毅)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23일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서 줄곧 평화와 안정의 굳건한 수호자이자 대화와 담판의 성실한 주도자였다"면서 "중국과 유관 각국의 노력 아래 최근 한반도 정세는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났다"고 자국의 역할을 부각했다.

북한의 선제조치 발표 직후인 지난 21일 중국 외교부는 담화에서 "중국은 계속해서 적극적인 역할을 발휘하겠다"고 했다.

현 국면에서 중국이 적극적으로 역할 확대를 모색하는 고리는 북미간의 직접 담판이 필요한 비핵화 보다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아우르는 평화체제 문제다. 실제로 중국은 남북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 가능성이 거론되자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중국은 한반도 문제의 당사국으로 이를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밝히는 등 강한 개입 의지를 드러냈다.

중국이 남북·북미정상회담에서 평화협정 체결과 종전선언 논의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할 명분을 찾는 과정에서 자국이 주도하는 6자회담 체제로 논의를 확대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 일본, '재팬 패싱' 우려 속 북일대화 띄우기…납북자문제 해결 총력전

남북미가 주도하는 대화 흐름 속에서 가장 속을 태우고 있는 이웃국가는 바로 일본이다. 한국·미국과의 긴밀한 3각 공조를 이루며 대박 압박을 주도해온 일본으로서는 정세 흐름이 대화 쪽으로 급선회하자 당혹감을 느끼며 '재팬 패싱'(일본 배제) 구도에서 탈피하기 위해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아예 팔을 걷어붙이고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최근 대화흐름에 일본을 적극적으로 포함시켜달라며 외교적 로비전을 펴고 있는 형국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 24일 문재인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북한 정세를 둘러싼 움직임이 가속하는 가운데 한일, 한미일 사이에서 밀접하게 연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는 한미일 3국 협력의 틀 내에서 한반도 평화 논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YNAPHOTO path='PYH2018042319450034000_P2.jpg' id='PYH20180423194500340' title='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는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caption='(베이징 AP=연합뉴스) 중국을 방문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왼쪽)이 지난 23일(현지시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

지난 18일에는 직접 미국으로 달려가 트럼프 대통령과 미일정상회담을 한 것도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에서 고립되지 않으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일본으로서는 한미일 3국 협조체제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한반도 평화 논의에 개입하거나 북한이 '새로운 전략노선'에서 주변국과의 대화를 언급한 만큼 지지부진한 북일 대화에 속도가 붙기를 기대하고 있다.

아베 총리로서는 사학 스캔들로 지지율이 추락하고 정치생명마저 위협받는 상황에서 북일대화가 재개될 경우 국내 정치 현안인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면서 국면전환을 시도할 수도 있다. 미·일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에 북미정상회담에서 일본인 납치문제를 거론해달라고 요청한 것도 이런 배경으로 보인다.

특히 아베 총리는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방북, 북일관계의 포괄적 정상화 추진을 골자로 발표한 '고이즈미 평양선언'을 되살리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 러시아, '6자회담 틀' 힘싣기…동북아 다자안보협력 체제 구축 시도

과거 6자회담 당사국으로서 동북아 평화체제 논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러시아는 일단 한반도 비핵화 논의를 위한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적극 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면에서는 중국처럼 한국과 미국이 주도하는 대화 흐름에 개입할 명분과 여건을 찾는데 주력하는 분위기가 읽힌다. 이미 동북아 역내에서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중국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미 지난해 7월 한반도 사태의 평화적·단계적 해결방안을 담은 '로드맵'을 제시하고 관련국들에 이행을 촉구해온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러시아는 미국의 독주에 맞서 한반도 논의를 러·중 로드맵의 틀 안으로 끌어들여 6자회담으로 확대해 가려 할 수 있다.

러-중 로드맵은 북한이 추가적인 핵·탄도미사일 시험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하고 핵과 미사일 비확산을 공약하면 한미 양국도 연합훈련을 축소하거나 중단하는 1단계에서부터 북미, 남북한 간 직접대화로 상호 관계를 정상화하는 2단계를 거쳐 다자협상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 지역 안보체제 등을 논의하는 3단계로 이행해 가는 단계별 구상을 담고 있다.

한반도 논의가 이런 구도로 흐른다면 러시아와 중국 등이 직접 당사자로 적극적으로 한반도 문제에 개입할 명분이 생긴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23일 "한반도 정세가 러시아와 중국이 제안한 한반도 문제의 '로드맵'(평화적·단계적 해결방안)의 궤를 따라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만족스럽게 확인한다"고 말한 것도 이런 구상을 내비친 것으로 볼 수 있다.

라브로프 장관은 이달 초 러시아를 방문한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의 회담에서도 "한반도 비핵화 문제와 동북아 안보 문제 논의 등은 바로 6자회담 틀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mong071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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